쿠바 관타나모의 미군기지 수용소에서 전쟁범죄에 준하는 수감자 학대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2002년 가을 조지 부시 미행정부의 최고위층에 전달됐으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세이모어 허시가 책을 쓰려고 수집한 자료들을 단독 입수해 보도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배치된 미군들이 고통을 유발하기위해 수감자들을 최대한 학대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전했다. 부시 행정부는 수감자들에게 오락시간을 허용하는 등 인격적 대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허시 기자와 인터뷰에 응한 미 국방부의 전직 보좌관은 수감자들이재소자 복장에 머리에 두건을 쓴 채 뜨거운 햇볕 아래 쓰러질 때까지 방치되는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허시는 새로 출간한 저서 `명령계통'(Chain of Command)을 통해 조지 부시 대통령이 사전 살해 면허를 가진 특수부대 창설을 승인하고 신체적 강압과 성적 모욕을가하는 불법적인 심문방법인 `특별 접근 프로그램'(SAP)의 사용을 허용하게 되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했다. 허시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은 알려진 것 보다훨씬 더 깊숙이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유린 스캔들에 개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허시는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가가 2002년 여름 관타나모 수용소를 방문한 뒤"미국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 분석가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측근인 존 고든 장군에게 이런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그 해 가을께 라이스 보좌관에게 보고서가 전달이 됐다. 라이스 보좌관은 고위 참모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럼즈펠드 장관에게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 자리에서 즉각 대응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이를 방기했다. 라이스 보좌관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는않았다는 것이 허시의 주장이다. 허시는 또 CIA와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최근 풀려난 수감자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학대행위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고주장했다. 허시와 인터뷰에 응한 한 정보담당 관리는 "FBI 요원으로부터 미군 헌병이 수감자를 폭행하고 옷을 벗긴 뒤 손 발을 묶어 놓고 차가운 물을 뿌려 저체온증에 걸릴때까지 학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허시는 특히 제네바협정 위반으로 인식되고 있는 비밀심문기법인 SAP 도입을 부시 대통령이 직접 승인함으로써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로 확산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허시가 입수한 부시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비밀 문건은 "제네바협정에 규정된모든 조항이 아프가니스탄과 세계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알-카에다와 우리의분쟁에는 적용되지 않음을 선언한다"고 적혀 있다. 허시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자행된 조직적인 인권유린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일부 프로그램의 작전명을 변경하는 등 은폐를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허시의 책은 근거없는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면서 "그가 인용한 익명의 소식통들이 신원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증거를 제시한다면 국방부는 이를 적극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럼즈펠드 장관은 지난주 기자들에게 알-카에다의 조직원들이 수감된 관타나모에서 가혹한 심문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으나 이를 확대하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