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생겼다. 이번 학기에 휴학하겠다는 대학생들을 말린 일이다. 2학기가 개강하면서 본격적인 취업 시즌이 시작된 캠퍼스.그 한쪽에 고개 숙인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여름방학 내내 고민하다 결국 휴학을 택한 4학년들이다. 이들은 친구들이 취업설명회에 몰려다닐 때 토익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4학년들이 무더기로 휴학을 하면서 이제 '5년제 대학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일부 지방대나 여자대학은 50% 이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떠나 4학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다. 휴학한 학생들의 사연은 갖가지다. 많은 학생들이 '준비 부족'을 든다. 토익 성적이 입사원서 제출에 필요한 최소 점수에 못미치는 학생들은 한학기 혹은 1년을 투자해서라도 '영어실력'을 쌓겠다며 휴학을 택한다. 영어 실력을 좀 갖췄어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올해 취업전망이 어둡다며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도 많다. 좀 더 거창한 이유를 드는 4학년도 적지 않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적성'을 못찾았다는 학생들이다. 평생을 걸만한 일을 찾아야 하는 만큼 한학기를 정신없이 보내기 보다는 '조용히' 다른 경험을 쌓으며 적성을 찾겠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선배 직장인의 눈으로 보기엔 이런 이유 가운데 어느 것도 귀중한 한학기 혹은 1년을 '허송'할만한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없다. 토익만 해도 그렇다. 영어공부를 고시공부처럼 하지 않는 바에야 휴학이 큰 도움이 될 게 없다. 취업문이 넓어질 1년 뒤를 도모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1년 뒤에 취업사정이 나아질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오히려 그동안 실력을 쌓아온 후배들과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면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오히려 적다. 적성을 못찾았다는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가슴 뛰는 일이란 한순간에도 만날 수 있고, 평생을 노력해도 못찾을 수도 있다. 물론 휴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학생들의 사연은 이해가 간다. 사회 전체에 '휴학 권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일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배정한 4천여억원의 대학생 학자금은 이미 지난달 말에 바닥이 났다. 대기업들은 일부 호황업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채용규모를 늘리는 '선심'을 베풀지 않고 있다. 노동계도 기존 조합원의 복지가 더 중요하지 취업예비군까지 걱정할 형편이 못된다. 중요한 것은 휴학이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경제상황이 급격히 개선될 가능성이 적은 지금 게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지난 4년의 준비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대학생들은 스스로 과연 이제까지 꿈과 포부를 키워왔는지를 물어야 한다. 오로지 '대기업 공채'만을 취업이라고 생각해온 좁은 소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봐야 옳다. 왜 창업을 꿈꾸지 않는가. 왜 미국이나 유럽,아시아의 일자리를 둘러볼 호기를 부리지 않는가. 왜 아무 회사나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세일즈하지 않는가. 이런 희망과 포부,패기만 있다면 당장의 취업은 문제도 아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나약해진 데는 부모들의 책임도 크다. 우리 부모들은 "집 걱정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해왔다. 그러나 '집 걱정'을 할 수 있어야 경제를 알고 돈을 알고 자기 일을 가지려고 이를 악물게 된다. 휴학을 올림픽에 빗대면 기권패다. 챔피언을 꿈꿔야 할 학생들이 아테네까지 가서 기권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 모두 그 방조자가 되고 있다. 모두들 어떤 일에 바빠서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