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지방의 특성화 고등학교 관광과를 졸업한 K양은 졸업 전인 지난해 11월 S호텔 입사에 성공했다. 불경기에 취업을 한 것이 어디냐는 위안은 잠시.K양은 자신이 단순 노무직으로 취직됐을 뿐이며 승진이나 자기계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등학교에서 나름대로 전문지식을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대학 학벌이 없으면 성공이 힘들다는 것을 절감한 것. 결국 K양은 관련대학으로의 진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실업계 출신인 K양이 대학문을 두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대비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영어 수학 등을 공부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IT,애니메이션 등 전문인력 양성과 고사위기에 처해 있는 실업계고교 활성화 차원에서 도입된 특성화고 제도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졸업 후 곧 바로 취직하더라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대학진학을 위한 입시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 실업계고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조금 등 특성화고 지원책은 자칫 교육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6월 기존에 선린인터넷고 1개 뿐이었던 특성화고를 5개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미림여자정보과학고 관악여자정보산업고 등 4개고가 특성화고로 추가 지정됐고 이들 학교에 5억원 이상의 보조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특성화고 최대의 적은 대입제도=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많아지고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기능직 보다는 다양한 전문직을 사회가 요구하게 되면서 실업고등학교 출신들도 대학진학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특성화고를 포함한 실업계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학교들의 커리큘럼이 취업 준비생 위주로 구성돼 있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수학 등의 과목을 공부하기 어렵다. 애니매이션 요리 등 특성화고가 담당하는 전공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관련 대학을 가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를 피해가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런 문제에서 비롯됐다. 미림여자정보고의 고세연 교장은 "직업탐구 영역이 신설되고 대학들이 정원외 3% 가량을 실업계에서 뽑을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됐지만 인문계에 비해 대학진학이 힘든 것은 여전하다"며 "주요 인문계용 과목들을 배제한 형태의 실업계열 대입제도의 신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대학교육과 연계성 떨어져=대학에 입학해도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다. 전문대학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실업계고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대학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 선린인터넷고의 천광호 교장은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인문계열 출신 학생들과 상당부분 전문지식을 쌓은 실업계 출신 학생들을 한꺼번에 교육시키는 대학의 실업교육에 문제가 있다"며 "대학들이 실업계를 받을지 인문계를 받을지를 분명히 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대학 노태청 교수도 "실업계 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대만이나 일본과 같이 대학교육과 고등학교 교육을 연계하는 3(고등학교)+2(전문대학),3(고등학교)+4(4년제 대학)식 실업교육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성화고 교사 태부족=특성화고가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전문지식을 가진 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특성화고들은 다른 교과목을 담당하던 교사에게 부전공 교육을 시켜 특성화 과목을 가르치게 하지만 급조된 교사들이 얼마만큼 전문화된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현장의 전문인력을 교사로 쓰는 것이 대안일 수 있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교사의 진입장벽이 높아 설령 외부 전문가가 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해도 교직을 별도로 이수해 오기 전에는 교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 교과 외 수업 시간에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이런 교육수요를 해결하려고 하면 높은 강사초빙 비용이 장애물로 작용한다. 교사의 숫자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과학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1학급당 3.1명의 교사를 두도록 돼 있지만 실업계 중 상과 계열은 2명,공과 계열은 2.4명에 불과하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