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9:36
수정2006.04.02 09:40
돈은 아주 영리하다.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그리고 누가 자기에게 이익을 더해줄 능력이 있는지를 정확히 안다.
그래서 돈은 늘 그런 사람을 따라다닌단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대부분 그런 답이 돌아왔다.
교육은 어떨까.
학생은 누구에게 교육을 받고 싶고, 학부모는 누구에게 교육을 맡기고 싶어할까.
역시 학생에게 관심을 가져주고,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워주는 곳이 아닐까.
물질과 정신세계를 각각 상징하는 돈과 교육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른다.
하지만 둘다 원칙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곳으로 몰린다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는 '특별한' 분야들이 많았다.
농업부문은 농촌보호와 식량안보 차원에서 가격보장이 이뤄져왔다.
금융산업도 IMF경제위기 이전까지는 정부의 보호틀 속에 있었다.
법률과 의료부문도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진입장벽을 쌓아놓은 철옹성이나 다름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결같이 경쟁력이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오랜 보호기간을 끝내고 쌀개방을 맞는 농촌은 지금 그야말로 붕괴직전이다.
정부가 애지중지하던 금융산업은 IMF위기로 일거에 무너져 1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그나마 지금 상당수는 외국자본이 주인이다.
법률과 의료분야의 경쟁력도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특별한' 보호를 받았던 곳은 역시 교육분야다.
아직도 대외개방이 이뤄지지 않은 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교육자치제도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속에서 길러진 교육경쟁력은 웬만한 나라 중에서 꼴찌(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평가대상 60개국 중 59위)수준이다.
사교육비가 연간 13조원을 넘고,올들어 7월 말까지 해외 유학과 연수부문의 국제수지 적자만 1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것은 그런 열악한 교육 수준을 반증하는 수치일 뿐이다.
교육경쟁력을 생각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몇년 전 기자가 뉴욕특파원 근무시절 초등학생인 아들의 학교숙제에 필요한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사서한테 목록을 내밀었더니 대뜸 "누가 볼 책인데요"하고 물었다.
그래서 "아들이 볼 책"이라고 했더니 사서는 빙그레 웃으며 "그럼 아들이 와야지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에겐 지식을 알려주는 것보다 지식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세계 최강 미국 경쟁력의 원천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열린우리당은 최근 대입전형 개선안,대학 구조개혁 방안,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제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 대학들이 새로운 성장산업을 이끌어낼 인재를 배출해내고,공과대학 학생들이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을 다시 배우는 사태가 바로잡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각각의 개혁안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일관된 방향성을 갖지 못하는 처방들인 탓이다.
이제 교육분야도 완전한 시장 원리에 맡겨 놓으면 어떨까.
국내외 학교간 경쟁,교사들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좋은 학교,유능한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한다고 정책당국이 걱정하는대로 인성교육이 소홀해질까.
교육시장의 심판 역할을 해야 할 교육부가 지나친 간섭으로 게임 흐름을 방해하거나,게임을 공정하게 진행할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 육동인 논설위원 dong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