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도일은 냉정한 아버지였다
29일 새로 발간된 코난 도일의 전기 `그늘 밖으로-코난 도일 첫 가정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젊은 두번째 부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첫 부인과의사이에서 난 큰 딸을 철저히 외면했으며 엄청난 재산을 모았음에도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난 도일은 1906년 첫 부인 루이스가 폐결핵으로 사망했을 때 이미 영국에서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작가였으며 몇 년 전부터 16세 연하의 젊은 성악가 지망생 진렉키와 교제를 하고 있었다.
그는 부인이 사망한지 1년만에 47세의 나이로 당시 31세였던 렉키와 재혼했고 렉키와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코난 도일은 렉키와 재혼을 계기로 첫 부인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을 냉대하기시작했다.
큰 딸 메리는 독일 드레스덴의 음악학교로, 아들 킹슬리는 사립학교 이튼의 보딩스쿨로 보내 버렸다.
의사에 반해 독일 유학을 떠났던 메리는 17세가 되던 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너무 외롭고 힘들다"며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코난 도일은 "8월까지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메리는 킹슬리에게 쓴 편지에서 "아버지는 나약한 정신상태를 비난하며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킹슬리는 의사 수업을 받다 폐렴에 걸려 26세의 나이로 숨졌고 재능있는 피아니스트이자 성악가였던 메리는 "목소리가 아름답지만 대중 앞에 설 정도는 안된다"며학비 지원을 중단한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메리는 이 편지를 받고 비로소 메조 소프라노 훈련을 받았던 계모가 아버지에게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코난 도일은 1930년 71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두번째 부인 렉키와 자녀들에게는 엄청난 부동산과 향후 수십년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일 저작권을 상속했지만 메리에서는 단 돈 2천파운드만을 유산으로 남겼다.
두번째 부인이 낳은 3명의 자녀는 평생 돈을 물뿌리듯 쓰며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했지만 아버지의 냉대로 내성적인 여자로 자라난 메리는 평생 월세방을 전전하며 가난에 시달리다 1976년 87를 일기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코난 도일의 친척으로 새 전기를 쓴 조지너 도일은 "위대한 작가를 폄하하려는것이 아니라 기록을 바로잡으려고 책을 쓰게 됐다"면서 "코난 도일은 질투심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젊은 두번째 부인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메리를 철저히 외면했다"고말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lcs@yna.co.kr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