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시장에서 제기돼온 '자본의 해외유출' 문제에 대해 정부가 뒤늦게 '물꼬 틀어막기'에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혐의거래 보고를 제대로 안한 은행들에 대해 무더기로 과태료 처벌을 내리기로 한 것도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해외로 유출되는 자금의 대부분이 은행을 경유하고 있는 만큼 은행을 압박하면 불법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배경

올 들어 지난 5월 말까지 개인들이 해외로 유출한 자본 총액은 80억7천만달러(9조3천여억원)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1%나 증가했다.

특히 '증여성' 해외송금액은 23억7천9백만달러(2조7천7백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6% 증가했다.

증여성 송금이란 해외 친지 등에게 증여 목적으로 돈을 부치는 것을 의미하며 목적이 불분명한 송금도 증여성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자본유출이 급증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은행들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수십만건의 외화송금 가운데 1만달러 이상은 모두 조사했으며 특히 10만달러 이상 거액 송금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사를 통해 금감원은 자금세탁이나 탈세 등과 관련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증여성 송금이 은행별로 많게는 수십건에 달하는 데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금감원은 검사가 끝난 2개은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해 달라고 FIU에 요청했고 FIU는 과태료 부과를 위한 행정절차에 들어갔다.

현재 은행들은 금감원측 주장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 놓고 FIU의 최종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됐나

현행 특정금융거래보고법에서는 5천만원 또는 1만달러 이상의 거래로서 자금세탁이나 탈세 목적이 의심되는 거래는 금융기관이 FIU에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 거래금액이 이에 미달하더라도 자금세탁 등의 혐의가 짙을 경우 보고하게 돼 있다.

금감원이 보고 누락으로 꼽고 있는 사례는 금액이 수만~수백만달러인 데도 송금 사유를 입증하지 못해 증여성 송금으로 처리된 것들이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는 "현행 법률에서는 은행원의 업무지식이나 전문성,경험 등에 따라 혐의거래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어 보고기준을 주관적 판단에 맡겨두고 있다"며 "금감원이 문제삼고 있는 사례들은 은행원의 업무 경험상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고 주장했다.

FIU 관계자는 그러나 "혐의거래 판단기준이 주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맘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보고했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보고 누락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은행들 타격 불가피

은행들은 결과적으로 자금세탁이나 불법자금 유출에 협조했다는 불명예를 입게 됐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계 은행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 있고 대외신인도 하락도 우려된다고 은행들은 주장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외 차입이 어려워지고 코레스 계약을 해지당하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레스 계약이란 외국환 은행이 국가간 무역이나 자본거래에서 송금 결제 등의 업무를 하기 위해 세계 여러 은행과 맺는 환거래 계약이다.

FIU 관계자는 "금감원이 은행들에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은행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려해 신중하게 최종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