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 사건 증가추세=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접수된 헌법소원 사건은 7백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백10건)보다 16% 늘었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3월에는 월간 사상 최대치인 1백30건이 접수되기도 했다.

헌재 민원실의 한 직원은 "탄핵심판사건 이전에 하루 10여건 미만이던 각종 문의 전화와 상담방문이 하루 최고 1백여건에 달할 때가 있다"며 "대통령 탄핵사건 등을 계기로 헌재의 존재가 일반에 알려지면서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헌재에 의지해보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내고보자'식도 많아=이처럼 헌재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무조건 내고 보자'는 식의 헌법 소원도 함께 늘고 있어 '업무 폭주' 등의 문제점도 나오고 있다. 올 1~7월까지 각하율 역시 54%로,지난 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역할과는 동떨어진 하소연도 많아 어쩔 땐 헌재를 '해결사'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신용카드 채권 추심원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려고 하니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도 심심찮게 걸려온다. 심지어 부부싸움 끝에 가출한 남편을 찾아줄 수 없냐는 황당한 요청까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재 전종익 공보관은 "전원재판부의 심리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과정에서 각하되는 비율이 전체 각하사건의 90%가량"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법조계에선 이 같은 사회현상에 대해 헌재 본래 기능과 소송기본요건,변호사들의 비전문성 등 헌법에 대한 이해부족이 빚어낸 총체적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북대 송기춘 교수(헌법학)는 "일단 헌재에 대한 신뢰와 법의식의 확대라는 점에서 사건증가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애초 정치적 이슈를 법적 판단의 형식으로 해결하려는 정치권의 이해로 헌재가 세상 밖으로 알려지다보니 기본권 문제해결을 모두 헌재에 의지하려는 왜곡된 경향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헌법소원 사건에 반드시 선임되는 변호사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거나 사전에 걸러내는 게이트 키핑역할을 좀더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학 박사인 황도수 변호사는 "사안의 경중만 있을 뿐 국민의 기본권보호 차원에서 보면 모두 중요한 사건들"이라면서 "헌재 스스로도 인력을 늘리는 등 빠른 사건처리방법을 모색해야 겠지만,단독 판사가 헌재사건의 1차심리를 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처리시스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관우·정인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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