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청소부 바텐더 화가 페인트공 기자 축구선수 투어가이드….

유럽에서 이른바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직업을 가지려면 수년간의 경력은 물론 각종 정부인증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규제에 유럽 경제가 발목이 잡혀 있다"고 보도했다.

벨기에에서는 정부인증 학원에서 5개월간 강의를 수료한 후 추가로 8개월간 각종 시험을 통과해야만 맥주집을 차릴 수 있다.

술집에서 수십년간 웨이터로 일한 경력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텐더 자격증을 얻어야 자신의 가게를 오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신문 기자가 되려면 6시간 동안 진행되는 타이핑 테스트를 치러야 하며, 투어 가이드는 역사 등 자격시험을 봐야 한다는 법률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독일은 더 심하다.

꽃꽂이나 굴뚝 청소, 벽난로 설치, 기와 잇기, 벽돌 쌓기, 우물 파는 일 등에 대해서도 수년간의 '도제(徒弟) 기간'과 각종 시험을 요구한다.

이들 직업군에서는 '마이스터브리프(Meisterbrief)'라는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창업할 수 있다.

엄격한 자격증 제도에 따른 부작용은 얼어붙은 고용시장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미국의 실업률이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유로화 사용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실업률은 이보다 두 배 가까운 9%를 웃돌고 있다.

1년 이상 장기 실직자 비중도 EU(43%)가 미국(12%)보다 훨씬 높다.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직업을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

유럽의 자격증 제도는 역사가 19세기 도제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에서는 고등기술을 가진 종업원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그 결과 고용주측에서는 수년간의 경력을 가진 '검증된' 근로자만을 믿고 채용하는 전통이 생겼다.

지금에 와서도 법제화된 자격증을 딴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만이 제품 품질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유럽 기업들이 많다.

자격증 제도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데는 노동조합의 영향력도 크다.

노조들은 직업군별로 '연대성이 강한' 노조원을 확보할 수 있어 자격증 제도 폐지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정부가 94개 자격시험중 53개만을 폐지하고 41개를 유지키로 결정한 것도 노조의 입김이 작용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그윈 하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선 일단 직원을 채용해 자체 트레이닝을 시킨 후 활용하는 반면 유럽 기업들은 자격이 갖춰진 종업원만을 고집하다 보니 신 기술 습득이나 소비자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며 "엄격한 자격증 제도는 일자리 창출에도 역효과를 준다"고 지적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