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시인이 지난 96년 '세기말 블루스' 이후 8년만에 세번째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민음사)을 펴냈다.

도발적이면서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강했던 시인의 시세계는 이번 신작에서 한층 더 성숙되고 관조적인 경향을 보인다.

육체와 정신을 내리누르는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시인이 직접 찍어 실은 흑백 스냅사진들에 의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나를 중심으로 도는 지구는/왜 이렇게 빨리 돌지/우리가 세상에 존재했었나/손 닿지 않는 꽃처럼 없는 듯 살다 가지만/눈에서 멀어지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 같아/생애는 상실의 필름 한 롤이었나/구불구불 뱀처럼 지나가지/그 쓸쓸한 필름 한 롤'('어디에도 없는 사람' 중)

출구가 보이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일상이지만 시인은 그래도 한줄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슬퍼하지 마세요/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살기엔 너무 지치고,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중)

현재 네살짜리 딸을 키우며 '싱글 맘'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인은 그래서 더욱 강하게 자신을 채찍질한다.

자신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희망의 폭동을 일으키기로' 한다.

이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 '생존의 알람시계가 절박하게 울어도 꿰뚫고 갈 것'이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자서(自序)를 통해 "끝 간 데 없이 힘겨운 나날을 일중독으로 잘 살아냈고,배우려고 하는 한 괴로운 체험도 버릴 게 없으며 모든 이가 내 삶의 스승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시인은 오는 9월 10여년간 찍은 사진들을 모아 첫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시를 통해서는 정제된 자신을,사진을 통해서는 감각적인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시인의 말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