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방기준 금리가 예상대로 0.25%포인트 인상됐지만 한국은행의 '콜금리 딜레마'는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미국 따라 콜금리를 올리자니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고, 마냥 이 상태를 유지하자니 물가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박승 한은 총재가 연초 인플레이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선언한 것이 무색하게 금융시장에서는 "연내 콜금리 인상은 물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내수침체 타개를 위해 되레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고개를 들어 한은으로서는 진퇴양난 상황이다.

◆ 콜금리 인상 압박하는 물가

국내에서 금리 인상 요인을 꼽는다면 역시 물가다.

6월 소비자물가는 3.6% 상승(전년 동월 대비)했고 이달에는 4%대 상승률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민생과 밀접한 생활물가지수가 15개월 만에 최대폭인 4.9%나 올라 정부와 한은이 물가를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만간 물가 상승률이 콜금리(연 3.75%)를 웃도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판이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1일 기자 브리핑에서 하반기 물가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묶어둔 공공요금 등 물가 상승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여기에 태풍 등 예상치 못한 변수로 농산물 가격마저 들먹거릴 경우 정부와 한은이 목표한 3%대 안팎의 물가 억제가 힘겨울 수도 있다.

◆ 1년째 손놓고 있는 금리정책

한은은 그러나 금리를 내리든 올리든 1년 가까이 금리 조정에 대한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다름 아닌 경기 양극화 때문이다.

지난 5월만 해도 박 총재는 "하반기중 경기 회복이 가시화하고 물가불안 요소가 있다면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5월을 고비로 각종 경제지표와 체감경기 지표가 하락세로 반전하면서 경기 전망에 대한 언급도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연말까지 콜금리 인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과 달리 한국 경제는 아직도 내수 침체라는 덫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은 고용과 소비가 되살아나는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은 고용과 소비 모두 침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도소매 판매) 증가율은 5월 중 마이너스 2.2%로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건설 수주는 24%나 급감했다.

더욱이 국내의 물가 압력은 수요 요인이 아닌 고유가ㆍ고원자재 가격 등 해외 요인에 의한 것이어서 금리정책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 고개 드는 금리 인하론

해외 투자은행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낮춰 잡고 있다.

UBS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5.3%에서 5.1%로 낮췄으며 모건스탠리도 4.9%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금융시장에서는 오히려 콜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4월까지만 해도 하반기 경기 회복 기대가 컸지만 내수 침체 심화에다 해외 악재까지 겹쳐 거꾸로 성장 둔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집행부나 금융통화위원들도 4,5월에는 '왜 금리를 못올리는가'라는 논의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금리 인하가 어려운 이유에 대한 논의가 앞서는 분위기다.

그러나 금리 인하는 긍정적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게 한은의 판단이다.

즉 엄청난 빚을 진 가계와 현금을 쌓아둔 기업들이 현재 금리가 높아 소비나 투자를 주저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