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星來 < 한국외대 교수.과학사 > 내일(7월1일) 토성 탐사선이 그 궤도로 들어간다. 1997년 10월15일 미국 우주기지에서 쏘아 올린 우주선 '카시니-호이겐스'호가 7년 동안 35억km를 날아간 끝에 토성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미국 항공우주국이 중심 역할을 맡고 있지만, 유럽 우주국과 이탈리아 우주국이 공동으로 추진한 것이라 보도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화성 목성 등을 탐사했고 사실은 토성도 원격탐사를 마쳤다. 이제 토성 궤도 안에서의 조사를 시도하며, 특히 내년 1월에는 아예 그 대표적 달(위성)인 타이탄에 '호이겐스'를 착륙시킨다.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서도 미국은 야금야금 태양계의 비밀을 탐색해 가고, 여기 유럽 나라들도 동참하고 있다. 이번 토성 탐사선이 '카시니-호이겐스'라 이름 붙여진 것만으로도 이 우주개발이 서양 사람들 공동의 잔치임을 알 수 있다. '카시니'는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1625∼1712년)라는 이탈리아 천문학자인데, 1650년 25세에 이미 볼로냐대 교수가 됐고 행성 관측에 뛰어난 업적을 내자 프랑스의 루이 14세 초청을 받고, 1669년 파리천문대의 초대 대장이 됐다. 토성의 고리 사이를 측정해 밝히고 거기에 '카시니 간극(間隙)'이라는 그의 이름을 남겼다. '호이겐스'는 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다. 크리스티안 호이겐스(1629∼1695년)는 특히 1655년 개량한 망원경으로 토성의 달 가운데 타이탄을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면서 특히 토성과 관련된 업적을 남긴 것이다. 우주선 이름부터 정치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이름은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가 관련돼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카시니-호이겐스'는 당연히 10년 훨씬 이전에 여러 나라가 함께 계획했고, 우주선을 제작해 7년 전 발사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라면 5년 이상의 과학적 계획이 실행되기는 어렵다. 5년이면 대통령이 바뀌고 새로 대권이란 걸 잡은 사람(들)은 그 전 것은 깡그리 없애고 새 것으로 갈아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주탐사 같은 장기 계획을 위해 한국의 대통령 임기를 10년 이상으로 늘리기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 땅의 정치하는 양반들이 제발 한국의 먼 장래도 생각하는 안목을 가져주기를 간구(懇求)할 뿐이다. 그리고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자.우리의 이라크 파병은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을 도와 장래 미국의 다른 분야에서의 협조를 확보하기 위한 몸짓이다. 그렇다면 이왕 어려운 일에 미국에 협조할라치면, 이 기회에 먼 국가 장래를 위한 과학기술상의 협조도 아울러 확보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마침 그런 전례가 있다. 일의 순서가 꼭 같지는 않지만, 월남전에 파병하던 1966년 미국은 한국에 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선물한 일이 있다. 마침 지난 5월 그 첫 연구소장을 지낸 최형섭 박사(1920∼2004년)가 작고했지만, 이 연구소가 한국 과학기술 발달에 크게 기여했던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전까지 밑도 끝도 없이 미국으로만 몰려가던 한국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이 이 연구소 설치를 계기로 유(U)턴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견하는 대가로 미국의 우주계획에 한국인 과학기술자를 참여시킬 조약을 맺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그러면 우리도 10년 혹은 그 후 언젠가 한국인 과학자 이름을 우주선 이름에 붙일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는가? 예를 들면 1760년대에 동양인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지구의 자전을 주장하고 우주의 무한함을 말했던 홍대용(洪大容·1731∼1783년)의 이름을 우주에 쏘아올릴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라크 파병과 한국의 우주선 '홍대용'호를 연관시키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1960년대 KIST 설립을 계기로 한국 과학기술이 전환하듯, 2000년대의 한국 과학기술도 미국과의 우주계획 협조로 이공계 위기 문제를 뛰어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