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계산기에 밀려난 주산이 지금은 추억의 한켠에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대단한 대접을 받았다. 은행 등 금융회사에 취직하려면 주산은 필수였고,공무원 시험에서도 주산급수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았다. 지금으로 치면 영어의 토익쯤 되는 셈이어서 너도 나도 다투어 주산학습에 열을 올렸다. 이런 까닭에 초·중학교에서는 주산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했다. 이처럼 위세를 떨쳤던 주산이 1980년대 후반 컴퓨터와 계산기가 보급되면서 점차 시들해지더니 10년 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해마다 실시되던 전국대회는 물론이고 주산급수능력시험도 슬그머니 폐지됐다. 세계대회에서 조(兆)단위의 곱셈과 나눗셈을 하며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신기의 암기력을 발휘했던 인물들도 서서히 매스컴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구식'딱지가 붙여졌던 주산이 초등학교 학부형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셈의 원리를 깨치고 암산능력을 키우는 데는 주산만한 게 없어서라고 한다. 주산은 또 작은 주판알을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젓가락질 못지않게 손재주와 지능개발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매력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얼마전에는 덕수정보산업고(구 덕수상고)에서 3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주산대회'가 열렸고,주산급수시험도 다시 추진되고 있다고 들린다. 주산학원에서 속셈학원,이어 보습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던 주인들은 다시 주산학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알을 끼운 주판은 중국에서 개발했지만 현재 쓰이는 주판셈법은 일본이 창안했다고 한다. 주판이 언제 한국에 전래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20년 '조선주산보급회'가 결성되면서 일반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보성전문학교가 주산경기대회를 개최하면서 그 보급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속도와 실용성에서 뒤진다며 한동안 홀대를 받았던 주산이 학생들의 두뇌개발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시 부활하고 있다니,차제에 옛 것을 한번쯤 들춰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