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5:13
수정2006.04.02 05:15
"지난 30년간의 일본 관련 비즈니스 생활에서 남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3만여장의 명함입니다."
1974년6월 삼성전자의 '도쿄주재원 1호'로 부임한 지 30년 만인 이달 초 삼성재팬 사장직을 떠난 정준명 전 사장(59)은 "일본은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아지는 나라"라면서 "일본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일본은 분명히 한국과 다른 '외국'이라는 시각을 갖고 접근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실물 경제인 중 최고의 '일본통'으로 꼽히는 그를 지난 11일 오후 록본기 삼성재팬 빌딩 사무실에서 만났다.
-주재원 생활 20년을 포함,일본 비즈니스로 30년을 보냈는데.
"일본인들은 처음 사귀기에 무척 어렵지만,한번 사귀고 나면 정도 많고 배신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先憂後樂(먼저 걱정하고 나중에 즐긴다)'형으로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또 한국인에게는 부족한 남에 대한 배려도 뛰어나다.
또 '자기수련을 위해 노동한다'는 사상은 일본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일본경제 전망은 어떤가.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기업들이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뛰어난 조직력 정보력 관리력을 가진 나라다.
제조기술도 여전히 세계 최고다.
일본의 잠재력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일본에서 한국기업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는데.
"처음 일본에 나왔을 때는 일본 대기업의 과장급을 만나려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한국기업의 존재가 미미했지만,이제는 소니와 합작해 액정패널을 생산할 정도로 성장했다.
삼성재팬의 매출은 지난해 1조엔(10조원)을 넘었다.
삼성은 글로벌 경영이나 구조개혁을 이미 10년 전부터 '경영 화두'로 추진해 일본기업보다 앞섰다.
그룹 오너가 10,20년 앞을 내다보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삼성은 배타적인 일본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경쟁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공존 번영한다는 삼성의 국제 비즈니스 전략이 먹혀든 것으로 판단된다.
또 삼성은 90년 중반 고베대지진의 구호활동을 시작으로 각종 사회봉사 활동이나 장학사업을 펼치는 등 현지화 작업을 추진,결실을 거두고 있다."
-삼성이 대일 무역적자를 주도한다는 비판도 있다.
"삼성의 무역적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수출이 늘수록,부품이나 소재를 일본에서 사들여야 하는 게 현주소다.
꾸준히 개선을 해야겠지만,더 중요한 것은 일본 소비시장에 한국 제품 수출을 늘려 적자를 줄이는 것이다."
-건강해 보이는데 비결은.
"요즘도 하루 4시간씩만 잔다.
일하는 게 즐겁기 때문에 취미를 찾을 시간도 없다.
골프도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하지,즐기기 위해 하지는 않는다."
정 전 사장은 오는 18일 귀국,삼성인력개발원 상담역으로 일할 예정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