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올해 1ㆍ4분기 동안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한국 돈으로 1조원 가까운 7억달러의 자금을 증자 형식으로 지원했지만 모두 벌어 놓은 이익(내부 유보자금)으로 집행했다. 인도와 중국 공장의 대규모 설비 증설 역시 현지법인이 자체 자금으로 조달, 본사의 보증조차 필요 없다는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는 올해 6조7천8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지만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등의 신규 차입은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차입금 8천5백억원을 상환, 빚을 1조8천억원으로 줄일 계획이다. 재무팀 관계자는 "거래은행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차입금 상환폭과 시기를 조절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량 대기업들이 넘쳐나는 이익으로 천문학적인 투자금액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물론 차입금마저 속속 갚고 있다. 재무정책상 꼭 필요한 거래은행의 '안면'을 봐주는 선에서 차입금 규모를 조절할 뿐 이전처럼 돈을 빌리기 위해 은행 문턱을 넘지 않는다. 현금성 자산이 10조원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는 기업이라기보다는 '금고' 그 자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는 오는 8월과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1조원어치를 차환발행하지 않고 모두 갚기로 했다. 지난 3월 말 현재 3천9백억원 수준인 차입금도 올해 안으로 전액 상환, 무차입 경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물론 7조9천2백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액도 내부 자금으로 처리한다. 때문에 돈 굴릴 데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산업은행 등 거래은행 담당자들이 "제발 빚 좀 갚지 말고 계속 빌려 쓰라"고 통사정하고 있다는게 자금팀의 얘기다. 법인통장 잔고만 2조8천억원이 넘는 포스코 역시 마찬가지. 올해 투자금액 2조8천억원을 '원샷'으로 집행하더라도 현금흐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게 포스코의 설명이다. 지난달 말까지 3천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한데 이어 연말 6천억원을 추가로 갚아 총부채를 2조6천억원으로 떨어뜨린다는 계획이다. 매출이 전액 수출로 이어지는 조선업체들의 경우 심지어 정책자금 혜택을 볼 수 있는 수출입은행과도 거래하지 않고 있다. 통상마찰 때문에 도크(Dock) 신축과 같은 막대한 설비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이보다 적은 수천억원대의 투자비는 자체 자금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천5백억원의 차입금을 상환, 차입금 규모를 5천억원 이하로 떨어뜨릴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외국에서 자재를 구입할 때 발행하는 1년짜리 유전스(usance)의 환가료(금리)가 1%에 불과하다"며 "굳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