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 우리증권 사장 pslee@woorisec.com > 나는 텔레비전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텔레비전 자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데다 이런저런 약속들로 바빠서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이 두엇 있는데,그 중 하나가 '동물의 왕국'이다. 이 프로그램은 재탕 삼탕 하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동물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색다르게 해석해줘 흥미를 배가시킨다. 동물들의 생활상에서 우리의 삶과 행동을 돌이켜보게 되고,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행동들의 숨은 의미를 깨닫게 되니 즐겁다. 얼마 전 프로그램에서는 새들의 부부관계가 소재였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아예 부부라는 틀을 갖지 않거나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부부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새들만은 사람처럼 일부일처 방식으로 살아간다. 모든 조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부부가 되면 평생 해로를 하는 새들이 많고,우리가 잉꼬부부니 뭐니 하는 것도 이런 새들의 삶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새들도 바람을 피운다는 점이다. 한 조류학자가 두루미를 관찰하던 중 이들의 부부관계가 건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둥지 안 알의 DNA를 조사해 보니 평균 40%가 부적절한(?) 관계의 산물이었다고 한다. 주로 수컷이 둥지를 비울 때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며,이를 모를 리 없는 수컷은 개의치 않고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주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물론 수컷 새도 밖에서 바람을 피운다. 이는 두루미뿐만 아니라 부부의 틀을 유지하는 모든 새들에게서 나타나는데,보다 나은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남기려는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며 결코 배우자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는 해설로 마무리되었다. 텔레비전을 끄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아니 우리나라 부부의 요즘 세태에 대한 여러 생각들로 이어졌다. 치솟는 이혼율과 경제적 빈곤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면서 이 아이들의 47%는 부모나 친척이 직접 고아원에 맡긴 것이고,46%는 10대 미혼모의 아이들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면서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아이들이 이렇게 버려지는 것을 보면,바람을 피우면서까지 보다 나은 후손을 확보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부부가 합심해 정성스레 키우는 새들이 새삼 현명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