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그린스펀 마법' 다시 기대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최근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4년 임기의 의장직에 재지명했다.
이에따라 지난 87년 폴 볼커의 후임자로 FRB 의장이 된 그린스펀은 스스로 중도 하차하지 않는 한 총 21년동안 '미국의 경제대통령'자리에 앉아 최장수를 기록하게 된다.
실로 장구한 세월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책임자인 공인으로서 항상 언론과 공공의 관심과 감시를 받으며 21년을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미 카터 대통령 때부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시절까지 무시무시했던 인플레를 잡는데 성공한 '존경스러운' 볼커 의장도 8년을 넘기지 못한 것에 비하면,그린스펀의 5차 연임은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표적 자유론자인 아인 랜드(Ayn Rand)의 문하생인 그린스펀은 지난 87년 8월 미국 통화정책의 사령탑이 됐다.
그후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화당원인 그를 두 차례나 재지명했다.
이는 어쩌면 두 사람이 색소폰 연주자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린스펀은 젊은 시절 헨리 제로미악단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고,클린턴도 색소폰을 즐겨 불었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87년 10월 블랙먼데이(주가대폭락)사태와 90년대 초 저축대부조합(S&L)부실로 대표되는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수습,미 경제안정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이 진짜 이유였다.
특히 92년 대선에서 '바보야,이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stupid!)'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아버지)부시 전 대통령을 꺾은 클린턴은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FRB 의장과 함께 대통령직을 수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에따라 그린스펀을 FRB 의장직에 두차례나 유임시킴으로써 오늘의 그린스펀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게 했다.
그린스펀은 당시 40대 젊은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능수능란한 통화정책으로 받쳐주면서 미국과 클린턴에게 신경제 호황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미국은 90년대 중·후반 높은 경제성장률에 낮은 실업률과 인플레율의 번영을 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린스펀 의장이 황금시절만 누린 것은 아니었다.
시련과 실패,그에 따른 여론의 비난도 적잖았다.
2001년 초 기술주를 중심으로 증시버블이 꺼지면서 미국은 경기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었고,그린스펀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경기침체를 야기했다는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하지만 지난 17년간 그린스펀은 FRB 의장으로서 '기적의 근로자(miracle worker)'였다.
그린스펀 의장은 멋지게 색소폰을 불던 것처럼 FRB라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도 능수능란하게 연주,금리와 물가를 동시에 매우 낮게 유지하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이를 생산성 향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세상은 그린스펀 의장의 탁월한 통화정책이 근본 요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심지어 다른 사람을 여간해서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존 케리 대통령후보로부터도 찬사를 듣고 있을 정도다.
5차 연임을 앞두고 있는 그린스펀 의장이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원유 등 국제원자재가격 상승탓에 미국의 물가안정 기조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인플레를 경고하는 깃발이 가까이에서 펄럭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요구와 바람으로 그린스펀은 또 한번 FRB의 경작자가 됐다.
다시 한번 그의 마법에 희망을 걸어본다.
정리=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
--------------------------------------------------------------
◇이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소개된 칼럼니스트 조지 맬로언의 'Alan Greenspan:The Money man everyone loves'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