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복귀이후] (김중웅 회장-어윤대 총장 대담) '집권2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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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이 대(對)국민 담화문을 통해 '민생과 상생의 정치'에 최우선을 둘 것임을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은 16일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 회장과 어윤대 고려대학교 총장의 대담을 통해 집권 2기를 맞는 노무현 정부의 과제를 살펴봤다.
대담에서 김 회장은 정부가 중장기 성장원칙 확보와 지도층의 도덕성 회복에 초점을 맞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어 총장은 탄핵을 전후해 곳곳에 산재해온 '전쟁터'를 줄여나가는 등 분열돼 있는 국민 여론을 통합하는 상생의 리더십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헌법재판소 판결로 2개월여간 지속됐던 탄핵정국이 끝났습니다.
이번 심판 결과가 주는 의미는 우선 정치적으로는 인치(人治) 중심의 권위주의가 약화되고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점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불안 양상이 나타나지 않아 사회시스템의 성숙성이 확인되는 한편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고 봅니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 =탄핵안은 기각됐지만 탄핵정국이 시작된 근본적 이유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개혁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프로세스(과정)'가 필요하고, 변화를 이끌어나갈 '체인지 에이전트(주역들)'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서 탄핵정국이 시작됐습니다.
노 대통령의 비전 자체가 반드시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체인지 에이전트'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프로세스'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됐던 거죠.
노 대통령이 앞으로는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보다 많이 듣는 쪽으로 바뀔 것으로 봅니다.
김 회장 =일단 대통령이 복직했으니 정치권에선 개혁을 빨리 진행하려 할 것 같습니다.
국민들도 개혁을 바라고 있고.그러나 '무엇을 개혁하고,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아직 없습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하는데, 개혁의 우선순위를 놓고 볼 때 그것들이 제일 중요한 건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대립이 생길 겁니다.
말로는 '상생(相生)'하겠다고 하지만 갈등과 대립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역할과 정치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어 총장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개혁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는게 문제입니다.
개혁이라는 얘기만 있지, 가는 길에 대한 합의가 없습니다.
(노 대통령이) '내 뜻이 개혁이다'라고 얘기하기에는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당선됐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조건 변하겠다는 것보다는 국민들을 상대로 개혁의 비전에 대해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야유회 갈 때 산에 가는 줄 알고 장비를 챙겨 왔는데 운전수가 바다로 데려가면 사람들의 당혹감은 굉장히 클 것입니다.
국정운영도 마찬가지지요.
김 회장 =개혁방향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정치적으로는 부정부패를 해소해야 합니다.
지도층의 도덕성(노블레스 오블리주) 회복과 가치관 정립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법치원칙을 중시하는 사회 기풍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장경제원리를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어 총장 =개혁도 필요하지만 국내외 경제 상황이 굉장히 어렵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최적의 경제정책을 펴더라도 지난 2,3년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는 투자와 소비가 여전히 부진하고, 유가 중국긴축 등 대외변수들도 불리하게 바뀌고 있는데, 우선은 이런 당면과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개혁의 장기적 비전에 대한 합의를 형성해 가는 게 순리라고 봅니다.
김 회장 =요즘 내수 부진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내수 침체가 계속될 위험이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한국 경제는 외부 충격에 지나치게 취약한 대외의존구조를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그동안 단기정책에만 치중했지 이를 치유할 중ㆍ장기 대책에는 소홀했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때 한번 혼쭐이 났으면서도 여전히 경제구조는 에너지 다(多)소비형입니다.
부품ㆍ중간재 산업은 아직도 경쟁력이 없어요.
수출호조가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도 말이죠.
차이나 쇼크,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 고(高)유가 이런 것 때문에 잘못하면 한국 경제가 올해 안에 '더블딥(double dipㆍ짧은 회복후 재침체)'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대통령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 총장 =우선은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경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탄핵기간에 경제정책은 이전보다 국민들에게 더 안정감을 줬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경제에 대한 정치권의 관여는 오히려 혼선과 불안만 키울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경제 문제는 현 정권에서 보기에 보수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도 지식과 경륜을 갖춘 사람을 대거 등용해야 외국인 투자자와 기업들에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김 회장 =지난 1년간의 정책을 보면 국내 상황에만 얽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입니다.
국내 집단이기주의에 너무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비준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거죠.
글로벌 사회속에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국정을 운영해야만 개혁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 총장 =한국 경제가 중ㆍ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투자가 꼭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다시피 21세기는 지식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대학에 대한 투자가 선진국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됩니다.
지식 창출을 위한 투자는 다른 투자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과감히 해야 합니다.
김 회장 =총선 이후 지금까지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습니다만, 이분법적인 접근은 안됩니다.
첫째, 분배를 하더라도 성장원천을 잠식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글로벌 경제속에서의 분배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화된 경제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분배도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는 분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플러스섬(plus-sum)'적인 분배를 해야 합니다.
분배를 있는 사람의 돈을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외환위기때 붕괴된 중산층을 복원하는데 분배의 초점을 둬야 합니다.
분배를 하더라도 '국민소득 2만달러로 가는 분배'냐, '잃어버린 10년을 계속하는 분배'냐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 총장 =정부가 이념중심의 정책을 수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
이미 다 증명돼 있는 결과에 대해서 또다시 이념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념보다는 '누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게 중요합니다.
이들은 보기에 따라 한국 기업이 아닐 정도로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높습니다.
경우에 따라 본사를 외국에 둘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정부 정책이 마치 대기업을 타깃으로 해 전쟁 벌이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경제에 좋지 않습니다.
김 회장 =지금부터는 어느 섹터(부문)보다 노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데, 집권 2기를 맞는 노 대통령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리더십은 포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용을 통한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지난 대선때 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국민통합과 민생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 총장 =동감입니다.
지금은 분열된 걸 통합하는게 필요한데, '전쟁터'를 너무 많이 만들면 안됩니다.
전장을 줄여야 합니다.
대북관계처럼 국민들의 의견이 엇갈린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지 말고, 필요한 일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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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김중웅 회장
△1964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75년 미국 클라크대 박사(경제학)
△1980~87년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85년 세계은행 고문
△1987~98년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
△1997~98년 청와대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회 위원
△2004~현재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어윤대 총장
△1967년 고려대 상대 경영학과 졸업
△1978년 미국 미시간대 박사(경영학)
△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1992∼95년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1999∼2000년 국제금융센터 초대 소장
△2002∼2003년 한국경영학회 회장
△2003년∼현재 고려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