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월의 편지 .. 김동근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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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kim1127@kicox.or.kr
어린 시절 걷기가 싫어서 길들이 알아서 움직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짜로 길이 움직이는 세상이 됐다.
힘들게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위층과 아래층으로 데려다주고 걸어 다니는 보도가 저절로 움직이는 시대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됐다고 좋아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박찬호의 광속구보다 2배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도(KTX)'의 개통으로 전국은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기적' 같은 이런 문명의 놀라운 힘은 요즈음 사람들에게 '빛의 속도보다 빨리 변화해야 한다'는 '속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생활환경의 변화 속도는 정보화로 인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생활 필수품이 되고,한번 올라타면 제 스스로 멈출 때까지 꼼짝없이 앉아 속도에 몸을 맡겨야 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우리네 삶의 양식도 속도경쟁이 붙었다.
소식을 전하거나 안부를 물을 때도 과거처럼 느긋하게 앉아 편지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간편한 e메일이 있어 편지 쓸 일이 더욱 없다.
가족간에도 인터넷을 활용해 e메일로 마음에 있는 말들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 사소한 내용까지 e메일을 통해 서로 잘 알고 있으므로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자녀들이 방학 때 집에 와도 화제 삼을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 보내면 1분 만에 상대방에게 도착하는 e메일은 간편하지만 제대로 마음을 담기에는 너무 가볍다.
아무래도 글씨를 직접 손으로 쓰는 것보다 컴퓨터 자판기로 쳐서 보내는 e메일은 생각의 깊이와 정성이 부족하다.
우리네 생활환경이 빠르고 편리해지는 만큼 삶의 깊이와 무게를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정의 달 오월을 맞아 가족들에게 e메일이 아닌 편지를 보내보자.
오랜만에 펜을 들어 마음이 담긴 말을 정성스레 예쁜 글씨로 쓰고 또 편지봉투엔 친밀하고 진솔한 사랑을 함께 봉해 우표를 곱게 붙여 우체통에 넣자.
부모님이나 스승님에게 가는 노선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상대편에게 편지가 도달하는 데 이틀 정도 걸리겠지만 기다림과 설렘은 그 만큼 온기도 함께 전할 수 있어 더욱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