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편찬 '고려 멸망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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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함께 한국고대사의 양대 문헌으로 꼽히는 '삼국유사'의 편찬자와 편찬시기에 대해 기존 학설을 뒤집는 반론들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 일연(一然·1206~1289)과 그 제자 무극이 완성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삼국유사가 고려시대에 초고 형태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책으로 간행된 것은 고려 멸망 2년 뒤인 1394년 이후의 일이며 편찬에서도 일연 혹은 무극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후대에 여러 저자들의 글이 덧붙여졌다는 것이다.
하정룡 송광사 성보박물관연구원은 1~2일 경기 김포 중앙승가대에서 열린 2004 한국불교학결집대회에서 발표한 '삼국유사의 성립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삼국유사는 고려시대에 간행된 적이 없고 가장 빠른 판본은 1394년 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존 삼국유사 전 5권 중에서도 일연 저작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일연 찬술'이라는 문구가 확인되는 제5권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이근직 경주대 강사는 삼국유사의 고조선 관련 기록을 보면 '백악궁(白岳宮)'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것은 고려 공민왕 때 설치됐으며 아무리 빨라도 편찬시기가 공민왕 이전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원도 철원에 대한 표기가 '鐵圓'에서 '鐵原'으로 바뀐 것도 일연이 사망한 후인 1308년이지만 삼국유사에는 철원을 '鐵圓' 혹은 '鐵原'이라고 뒤섞어 표기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또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을 고(古)조선이라고 표현한 것은 중국계 정권인 위만조선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을 염두에 둔 것이므로 고려시대 판본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