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등 금융회사들과 대기업들이 공금 횡령, 고객돈 빼돌리기, 정보유출, 산업스파이 등 '직원 내부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상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 불안심리가 커진 데다 계약직 연봉제 경력직 채용 등이 늘면서 직장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지고 직업윤리가 급격하게 퇴색한 탓이다.


지난 7일 발생한 우리은행 직원들의 4백억원 횡령사건은 고객 돈과 신뢰로 영업을 하는 금융회사 직원들 사이에도 한탕주의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용의자 박모 과장(36), 오모 대리(32) 등은 회사 돈으로 증권 선물옵션투자를 하다가 대부분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8일 주식투자에 실패한 모 기업 직원(33)이 회사 공금 28억원을 빼돌린 사건도 외환위기 이후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 퍼져있는 한탕주의 비리의 전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3백84건이던 금융회사의 횡령·유용 및 사기 사건은 작년엔 4백96건으로 29%(1백12건) 늘었고 이 가운데 64.5%가 내부 직원에 의한 횡령ㆍ유용 사고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고객이나 회사 돈 유용 외에도 고객신용 및 신상정보를 빼돌려 팔거나 첨단기술을 경쟁회사에 넘기는 산업스파이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국정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스파이 사건으로 기업들이 입은 직ㆍ간접적인 피해액은 14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기술정보 유출에 따른 기업피해가 막심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산업스파이 사건은 내부직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작년 한햇동안의 관련 사건 및 기업 피해액이 외환위기 이전 10년간 발생건수 및 액수와 맞먹을 정도로 갈수록 심하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내부감시망 강화에 나서면서도 '작정하고'저지른 내부비리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BC카드 준법감시팀 김흥수 차장은 "나름대로 이중삼중의 보안감시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몇사람만 뜻이 맞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내부의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선 직원들에 대한 교육과 함께 체계적인 내부감독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갑영 연세대 정보대학원장은 "성과주의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직원의 윤리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됐었다"며 "특히 경기불황과 상시 구조조정 체제 정착으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기업과 개인간의 신뢰가 깨졌다"고 지적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