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아내 雨鄕의 '자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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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雲甫)김기창화백의 아내였던 우향(雨鄕)박래현(1920-1976)은 운보의 그늘에 가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하지만 작품성에 있어서 우향이 운보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전통 수묵채색에서 출발해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에 이르기까지 그가 남긴 작품의 조형성은 30여년이 지난 요즘에도 돋보일 정도로 독창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향의 유작을 감상하는 '우향 박래현'전이 4월2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포럼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새로 개관한 전시장을 기념해 가나아트갤러리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우향 유작전으로는 1978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20여년만에 마련된 것이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대표작 회화 20여점과 타피스트리 판화 드로잉 삽화 등 총 70여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일본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우향은 근대 첫 세대 여성작가로 동·서 미학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일궈냈다.
그의 대표작인 '아이들'(1956년작)은 화면 왼편의 두 아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몸은 겹쳐져 중앙의 인물과도 연결돼 현대적인 조형감각이 엿보이는 수작이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에 그린 '나녀(裸女)' 등 추상적 여성상들은 무한한 대지와도 같고 따뜻함을 지닌 여성의 속성을 이미지화한 작품들이다.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앵포르멜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작품' 시리즈에는 추상적이면서 선명한 색면들과 함께 기다란 띠들이 드러난다.
줄줄이 꿴 엽전 같기도 한 띠들은 채색물감과 아교를 사용해 투명한 번짐의 효과를 내면서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우향은 60년대 말부터 74년까지 뉴욕에 머물며 판화와 타피스트리 작업에 몰두하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다양한 실험작품들은 우향 특유의 꼼꼼함과 구성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미술평론가 김미경씨는 "우향은 동·서양의 이분법 개념에 제한받지 않고 장르를 넘나들며 조형적 자유를 만끽했던 뛰어난 여성작가였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는 우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운보의 작품 두 점이 함께 출품된다.
5월2일까지.(02)720-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