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펀드'를 운용키로 한 것은 '행동하는 주주(株主)'로 나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 의결권 행사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운용자산 1백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의 이같은 행보는 상장ㆍ등록기업의 경영 관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소버린자산운용과 SK그룹간의 경영권 다툼을 계기로 기업지배구조가 재계의 핫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외국인의 공격적인 우량주매집에 따라 국내 기관의 증시 안전판 역할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외국계펀드의 대항마로 나설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 펀드는 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이라는 부작용을 빚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경영과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우량 중소기업 주식 매수방침 국민연금 관계자는 "미국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등 해외 연기금들은 오래전부터 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은 중장기 안목에서 접근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투자 성과를 봐가며 투자 금액을 매년 늘려 나갈 계획이다. 펀드의 투자대상은 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과 후진적인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를 개선할 경우 기업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 등 크게 두가지 부류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지분율이 최소 1%는 넘어야 한다"면서 "우량 중소기업이 투자의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 경영간섭과 '한국판 소버린' 지배구조개선 펀드가 투자대상으로 선정한 기업의 주가는 상승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문제로 주가가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기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사외이사 선임 △투명 경영 △공시 강화 △주주가치 증대 등과 같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 이를 해당 기업에 적극 요구할 계획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연금이 투자수익률을 위해 경영간섭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SK(주) 사례에서 보듯 외국자본의 부당한 경영간섭에 대한 최대 기관투자가로서 '대항마'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간과해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국민연금에 이어 다른 기관투자가들의 동참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 경우 우리 증시의 저평가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낙후된 지배구조는 빠른 속도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 외국계 노하우 활용 국민연금은 펀드운용주체로 모두 외국계 회사를 선정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노하우를 갖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템플턴투신은 투자종목을 고를 때 기업지배구조를 주요 항목으로 평가한다. 하나알리안츠투신은 작년말 국내처음으로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기업지배구조 펀드를 선보였다. 알리안츠그룹 계열사들이 미국 캘퍼스의 기업지배구조 펀드를 운용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활용하고 있다. 운용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외국사를 운용회사로 선택한 것은 지배구조펀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