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소설가 박완서씨의 작품에는 우리네 삶을 날카롭게 꿰뚫는 주제와 교훈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슬며시 웃음짓게 만드는 따스한 인간미도 공존한다. 박씨의 새 동화집 '보시니 참 좋았다'(이가서)는 작가의 이러한 문학세계를 잘 보여준다. 책에는 표제작과 '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 등 신작 2편,70년대 말 내놓은 작품 6편 등이 실렸다. 표제작 '보시니…'는 어릴 적 꿈이 화가였던 한 할아버지가 소년시절 그렸던 성당벽화가 60여년의 세월과 함께 어느덧 '명작'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그렸다. "내 평범한 그림을 예술로 만든 건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되듯이 말이다"라는 할아버지의 말 속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쟁이들만 사는 동네'는 환쟁이인 남편의 대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내와 아내의 죽음을 보고 자신도 숨을 거둔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천생연분이란 어떤 것인지를 들려준다. 79년 첫 동화집에 수록된 '다이아몬드'는 작가가 그 시절 쓴 것 중 가장 애착이 간다고 고백한 작품.15세기 베니스의 금속공이 귀족의 딸을 사랑하지만 귀족은 다이아몬드를 연마해 와야만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말한다. 청년은 평생에 걸쳐 다이아몬드를 연마한 끝에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만 연마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예쁜 소녀는 게으른 중년여인이 돼 버렸고 청년에게 남은 것도 벗겨진 머리와 짓무른 눈뿐이다. 인생은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작은 이치를 얻을 뿐이지만 그 과정이 바로 인생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