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핵 6자회담이 한창이던 26일 저녁 베이징.북한 대표단의 현학봉 대변인이 이날 저녁 8시50분(중국시간) 북한대사관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성명서를 두차례 낭독한 뒤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북한은 저녁 8시에도 회담이 열렸던 조어대(釣魚臺) 정문 앞에서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북한 대사관은 이날 저녁 8시30분을 전후해 일부 한국 특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10∼20분내로 빨리 오라"며 대사관 앞 기자회견 사실을 통보했다.하지만 한국프레스센터가 설치된 메리어트호텔과 대사관은 승용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한국 취재진들은 차를 타고 가면서 "설마 도착하기도 전에 끝내지는 않겠지…"라며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 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 한국의 한 TV방송사 카메라팀이 녹취를 했을 뿐이다. 한국 취재진은 먼저 도착한 외신기자들에게 발표 내용을 확인하느라 진땀을 뺐다. 발표 내용을 녹음한 일본 기자에게 녹취내용을 들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일본 기자는 한마디로 '안된다'고 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판가름지을 수 있는 북핵 6자회담.북핵의 당사자인 우리가 북측의 회견내용을 일본 기자에게 물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북한은 이번 '노상발표'에서 미국의 협상태도를 비난하면서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겠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어쩌면 회담의 향배를 좌우할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북한은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북핵 문제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국제 이슈다. 일방적 발표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이젠 북한도 과거의 '촌스러운 행동'를 버리고 세련된 협상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북한당국을 위하는 지름길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