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검찰에 소환된 26일,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사는 일대 긴장감에 휩싸였다. 점심 식사 길의 엘리베이터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사무실에도 몇 마디 소근거리는 얘기를 제외하고는 짙은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대외업무를 맡고 있는 삼성 관계자들도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위기관리를 위한 삼성의 전매특허,'시나리오 경영'도 이번만큼은 빛을 잃는 순간이었다. 이 본부장의 소환을 지켜보는 다른 기업들도 착잡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에 검찰의 칼날이 조여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 자신들의 차례도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번 일로 각 계열사들의 경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달리 '관리의 삼성'으로 불리겠느냐는 식의 자신감도 애써 북돋우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누가 뭐라 해도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경영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 회장 경영 구상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 이학수 부회장이 이끄는 구조조정본부다. 구조본이 타격을 받는다면 '세계가 칭송하는' 이 회장의 리더십도 손상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는 삼성의 경쟁력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야말로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 대선자금 수사를 맞고 있는 삼성의 최대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과 비슷한 불안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룹 수뇌부에 흠집이 생길 경우 일파만파의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전개된다는 사실은 지난 1년간 SK사태가 충분히 보여준 터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적인 경영 여건을 들어 불법 행위에 연루된 재계를 일방적으로 비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치 후진국에 몸을 담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에 융단폭격을 때리는 식의 무차별적인 단죄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범의(犯意)의 고의성 측면에서 해당 기업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 대기업팀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