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0:00
수정2006.04.02 00:03
23일 외환시장은 개장 전부터 긴장감에 휩싸였다.
환율 방향은 이미 위쪽으로 정해져 있었고 다만 얼마나 잃느냐만 관심사였다.
무엇보다 주말 동안 엔ㆍ달러 환율이 1백9엔선까지 뚫고 올라간 것이 결정타였다.
한 달 전 이맘 때가 설 연휴여서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1개월물 정산 매물도 이날은 전무했다.
지난 금요일(20일) 환율 상승폭이 줄어드는 걸 보고 '환율 하락' 쪽에 베팅했던 딜러들의 입속은 바짝 타들어갔다.
오전 9시 개장하자마자 '혹시나…' 했던 딜러들의 실낱 같은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첫 거래가 1천1백80원에 터졌다.
12원70전이나 폭등했다.
이후부터는 외길이었다.
그동안 달러 매도에 치중했던 대다수 딜러들은 손실만회용 매수 주문(쇼트 커버링)을 내는데 급급했다.
일부에서는 더 늦기 전에 달러를 사두려는 가수요까지 일어났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지난 주말 원ㆍ달러 환율 상승이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추가 달러 매도에 나선 딜러들은 오늘(23일) 환율 폭등으로 대부분 '전사(戰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예기치 못한 환율 급등
지난주 중반까지도 시장에는 달러 약세(원화 환율 하락) 기조가 완연했다.
환율이 지난 9일 이후 6일 연속 하락하며 1천1백50원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가는 듯했다.
게다가 18일 정부가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규제 완화 조치까지 발표해 외환시장에는 온통 '달러 매도' 주문만 가득했다.
외환 당국마저 손을 놓을 경우 환율 내림세는 당분간 대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런 전망은 일거에 뒤집어졌다.
유로화 강세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전세계적으로 더 이상 달러를 팔기 어렵다는 인식이 형성된 데다 일본의 테러 경계령 강화 소식까지 겹치면서 엔ㆍ달러 환율 상승세에 가속이 붙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주말에는 엔ㆍ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1백7엔대에서 1백9엔대로 2엔가량 치솟아 이날 원ㆍ달러 환율이 장중 19원 가까이 폭등, 1천1백85원대까지 치솟는 단초를 제공했다.
◆ 환율 급등의 명암
외환 딜러들은 지난 주말 내내 가슴을 졸였다.
엔화 환율 급등세로 원화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경우 '매도초과 포지션'(달러 매도액이 매수액보다 많은 상태)인 딜러들은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했기 때문.
이날 개장하자마자 이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환율 상승은 국내외 딜러들의 '쇼트 커버링'을 촉발, 환율 오름폭이 확대됐다.
'환율 상승→쇼트 커버링→환율 추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 딜러들의 환차손이 커지면서 외환 당국이 시장 안정을 위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진우 농협선물 리서치팀장은 "외환 당국마저 매수세에 가세할 경우 달러 팔자 주문은 없고 사자 주문만 가득한 '매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그동안 시장 개입으로 과도하게 부푼 외환보유액을 조절하는 차원에서라도 보유 달러를 적절히 시장에 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시장 개입의 후유증으로 환율 하락을 걱정했던 재정경제부는 이날 완전히 불안감에서 벗어났다.
시중은행 딜러는 "결과적으로 재경부가 억세게 운이 좋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 환율, 어디로 튈까
예상 밖의 환율 급등으로 향후 환율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엔화 약세에다 정부의 시장 개입까지 가세할 경우 당분간 환율 고공 비행이 예상되지만 아직은 추세적인 환율 하락세를 점치는 견해가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환율 상승폭이 지나치게 컸던 만큼 엔화 환율이 하락 반전할 경우 폭락 우려도 있는 것으로 점쳤다.
시중은행 딜러는 "외환시장은 여전히 달러 공급 우위 상태여서 환율이 더 급등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그러나 환율이 다시 내려가면 외환 당국의 개입이 예상돼 당분간 1천1백80원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