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59년째를 맞은 조광페인트는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다. 창업자인 양복윤 회장(97년 작고)의 뒤를 이어 지난 85년부터 장남인 양성민 대표(60)가 회사를 이끌며 '페인트 외길'을 걷고 있다. 지난 1946년 창업자인 양 회장은 부산시 가야동 집에서 송진에 콩과 들깨기름을 섞어 수십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천연 페인트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6ㆍ25 전쟁 때 미군 군수물자용 페인트를 구입, 반가공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 제품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한 단계 높은 제품인 합성수지 페인트로 개발돼 잘 팔려 나갔다. 주문이 밀려들자 양 회장은 공장을 확장해 나갔다. 67년 가야동 공장에 이어 76년 사상공단에 5천2백여평의 공장을 완공했다. 60년대 말부터 동명목재 등 부산에 몰려 있던 대형 목재회사들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덩달아 조광페인트도 급성장한데 따른 것. 70년 초 가구판매가 급증한 것도 공장 확장에 일조했다. 이 덕택에 60년대 말 1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74년 군대 막사 등에 페인트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1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호황 뒤엔 위기도 있는 법. 1980년 위기가 찾아왔다. 동명목재가 문을 닫은데 이어 가구시장도 시들해진 데다 경쟁도 치열해져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85년 대표로 부임한 양성민 사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우선 제품 다변화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분체도료와 공업용 도료인 불소도료도 개발했다.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특수를 누리면서 기력을 서서히 회복했다. 그러나 제2의 위기는 외환위기와 함께 또다시 찾아왔다. 가구와 건설회사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판매대금이 회수되지 않았다. 임직원은 다시 똘똘 뭉쳐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조광페인트 소유로 돼 있던 부동산을 처분했다. 목재용과 건축용, 공업용 등으로 제품 다변화도 실시했다. 연구개발비를 99년 14억3천만원(매출액의 3%)에서 2003년에는 46억원(5%)으로 늘렸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회사는 1년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99년 7백38억7천만원의 매출에 4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2003년에는 매출 9백12억원에 당기순이익 3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천30억원이다. 조광페인트는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친환경성 제품인 '인테르니 제로 VOC(휘발성 유기화합물)'를 내놓았다. 오염물질 성분이 전혀 없는 페인트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 상반기 중 전자와 전기제품 전용 신소재 출시도 앞두고 있다. 냉동창고 등 영하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바닥용 도료와 미끄럼과 정전기 방지용 페인트 등도 개발 중이다. 양 사장은 "연내에 칭다오나 톈진 등에 진출해 중국에 터를 잡은 국내 기업과 중국 기업을 공략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