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혁신 시대를 열자] 'V I'엔 사양산업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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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대 후반 벨기에 영화산업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비디오와 케이블TV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문 닫는 영화관이 줄을 이었다.
버트클레이즈 그룹은 그러나 영화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람객들이 원하는 서비스에 주목해 25개의 스크린과 7천6백개의 좌석을 갖춘 세계 최초의 초대형 복합상영관 '키네폴리스'를 만든 것.
영화관은 번화가에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도심 외곽에 영화관을 세워 대형 주차장을 만들고 시설을 최고로 꾸몄다.
결과는 놀라웠다.
키네폴리스는 출범 첫 해 브뤼셀 영화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키네폴리스에서의 영화 관람이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으면서 죽어가던 벨기에 영화산업을 소생시키는 역할까지 했다.
한 영화관의 발상 전환이 사양산업을 살려내 고성장 산업으로 다시 일으킨 셈이다.
가치혁신(Value Innovation) 이론 주창자인 프랑스 인시아드 비즈니스스쿨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키네폴리스를 가치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현재의 고객뿐만 아니라 비(非)고객군에서도 수요를 끌어내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와 싸워 이기는 것이 목표인 '경쟁전략'은 한정된 영토를 놓고 싸우는 전쟁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키네폴리스의 예처럼 가치혁신 기업은 경쟁이란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경쟁자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낸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어떤가.
대부분 경쟁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싸게 만들까에 집중하고 있지만 원가경쟁력에 관한 한 중국을 도저히 이겨낼 재간이 없다.
일부 기업들은 더 나은 차별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해 선진국형 제품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포화상태에 빠진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가 돼야한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가치혁신을 일궈낸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위니아만도의 '딤채'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다른 업체들이 다기능 냉장고 개발에 매달릴 때 김치냉장고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냉장고를 만들었다.
김치냉장고는 주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현재 1조4천억원 규모의 새 시장을 형성했다.
한국이 부진한 내수를 회복하고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쟁을 넘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제2, 제3의 '딤채'가 등장해야 한다.
가치혁신을 통해 새 시장을 창출하는 기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