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교육, 빠를수록 좋다 ] 신용교육이 시급하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신용 교육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용에 대한 교육을 조금만 일찍 받았어도 신용불량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신용불량자 문제를 푸는 궁극적인 해법은 결국 신용교육인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경제신문이 '신용교육이 해법이다'는 주제의 시리즈를 시작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 사례 1… 사랑이 죄였다 김현정씨(가명ㆍ21)는 남자 친구를 '너무도 사랑해서' 무엇이든 사주고 싶었다. 돈 없는 대학생이었지만 신용카드 4장이 있었다. 남자 친구를 위해 카드로 긁은 돈은 8개월 만에 1천만원을 넘었다. 남자 친구는 한술 더 떠 카드를 빌려 달라고 했다. 그가 쓴 카드 금액은 석 달 만에 1천4백만원에 달했다. 그리고 나서 남자 친구는 이별을 통보해 왔다. 그는 떠났지만 빚은 남아 있었다. # 사례 2… 콤플렉스가 죄였다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손미영씨(가명ㆍ23)는 살만 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다이어트 식품, 기계, 의류에 총 9백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돈은 살을 빼지 못했다. 그러자 손씨는 다이어트에서 명품(名品)으로 관심 대상을 옮겼다. 좋은 물건만 걸치고 있으면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고 관심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다. 8장의 카드로 명품쇼핑에 열중하는 사이 빚은 8천만원으로 늘어났다. # 사례 3… 가난이 죄였다 복학생 신분인 이종철씨(가명ㆍ26)는 부모님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다단계 판매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이 이씨를 불렀다. "영업 실적이 좋아 지점장으로 승진시켜 줄테니 인감 증명서를 갖고 오라"는게 사장의 얘기. 별생각 없이 인감증명서를 제출했고 그 회사는 3개월 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어느날 사채업자들이 7천만원을 갚으라며 이씨의 집에 들이닥쳤다. 사장이 이씨의 인감증명서를 악용, 이씨 명의로 돈을 빌려 쓴 상태였다. 서울 명동에 있는 신용회복위원회에 가면 20대 신용불량자의 이같은 사연들이 넘쳐난다. 겉으로 봤을 때 이들은 사랑, 콤플렉스, 가난 때문에 각각 신용불량자가 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신용불량자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카드를 빌려주는 일, 상환계획 없이 카드를 쓰는 일, 인감증명서를 남에게 주는 일 등은 신용사회에선 금기시된 일입니다. 신용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의 잘못이 더 큽니다."(신용회복위원회 한복환 국장) 신용회복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7%가 "청소년들에 대한 신용관리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신용불량자의 대부분은 중ㆍ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신용관리 교육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용관리 교육만 제대로 받았더라도 신용불량자로 내몰리지는 않았다"는게 이들의 탄식이다. 외국의 몇몇 국가들은 신용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 아예 청소년 신용교육을 제도화해 놓았다. 영국은 99년 5월 '금융소비자교육에 관한 지침'을 만들고 금융감독청을 중심으로 신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투자 혹은 금융거래와 관련된 이익과 위험을 깨닫도록 하고 적정한 정보와 충고를 제공한다"는게 교육의 목표다. 교육 내용은 5∼11세 아동에게는 화폐 개념, 10∼14세 청소년에게는 현금이 아닌 다른 화폐와 신용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다. 수표ㆍ신용카드ㆍ직불카드에 대한 기능과 차이점을 배우는 이 과정에서 강조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이다. 영국 청소년들은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 개인파산 등을 간접 경험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롤플레이(역할분담게임)를 통해 신용불량자가 된 후 금융거래가 중단되고 주택을 압류당하는 상황을 몸소 체험하기도 한다. 미국은 학생들에게 생활설계에서부터 자산관리와 운용ㆍ투자방법까지 광범위하게 가르친다. 미국은 아예 2년 전부터 경제ㆍ금융교육을 초ㆍ중ㆍ고교 이수 교과목으로 '의무화'했다. 영국과 미국의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갚을 수 있는 만큼 소비하고 갚지 못할 때는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문화를 몸으로 익히고 있는 사이 '신용의 무서움'을 모르는 한국의 청소년들은 신용불량자의 늪으로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 이제 우리도 신용교육을, 그것도 하루 빨리 실시할 때가 됐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