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다시 본다] 동남아 : (4) '글로벌 스탠더드로 국가개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톨레삽에서 내려오는 강과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메콩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프놈펜.
거대한 물줄기인 톨레삽 강은 건기와 우기에 따라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다.
건기가 되어 메콩강 물이 마르면 톨레삽 물줄기가 메콩강 방향으로 흐르고, 메콩강 물이 많아지는 우기땐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물 흐름이 바뀌는 시점인 11월초에는 '봄옴뚝'이라는 캄보디아의 최대 축제가 벌어진다.
그래서인지 캄보디아인들은 '머지않아 세상의 물길이 바뀐다'는 낙천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수많은 정권이 바뀌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운명답게 캄보디아 왕궁 역시 그런 상징적인 강을 끼고 있다.
왕궁 인근에 있는 외신기자클럽(FCC)에서도 이 강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FCC는 1970년대 캄보디아 내전과 베트남전 당시 외신기자들이 머물수 있도록 허용된 유일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외국 관광객이 주로 찾는 카페로 변해있다.
이 카페에서 만난 체 반데스 캄보디아 총리실 국제교류국장(38)의 생각도 이 강을 닮았다.
캄보디아가 금방 바뀔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 정부는 체 반데드 국장같은 젊은 해외파 테크노크라트들이 실무를 장악하고 있다.
폴 포트정권 당시 40~50대 지식인들을 대부분 학살한 탓도 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빨리 구축하기 위해 우선 사람부터 데려왔다.
대표적 인물이 훈센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전자정부(e-Government)를 담당하고 있는 전국정보통신기술개발위원회(NIDA)의 리우드 사무총장.
40세를 갓 넘긴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실리콘밸리 IT업체에서 일하던 '미국 시민권자 교포'로 총리가 직접 스카우트한 케이스다.
그의 사무실에는 차관급이상에만 붙는 H.E.(His Excellency)라는 공식 존칭이 붙어있다.
캄보디아의 영어 열풍은 이들이 얼마나 빨리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려는지 보여준다.
프놈펜 도심 호주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영어학원은 1년 수강료가 4백50달러로 학교 교사나 공무원 연봉과 맞먹지만 학생들의 발길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끊이지 않는다.
영어를 잘해야 외국기업에 취직하고 임금도 두배이상 받을수 있어서다.
베트남에서는 공학박사 출신 정부 관료들이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경우 국장급 중에 30∼40대 박사출신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IT(정보기술) 강국을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이들은 국내외 기업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로부터 1천만달러를 무상지원 받아 베트남 중부 공업도시인 '다낭'에 IT대학을 설립 중이다.
이곳에서 선진국형 인재를 대거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자신하고 있다.
지난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돌았을때 탁신 총리는 "외국인들이 태국에서 사스에 걸릴 경우 미화 10만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태국은 이미 선진국이므로 그런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실제 사스에 걸린 외국인은 한명도 없었다.
태국은 고질적인 마약 문제를 해결하는 등 사회시스템도 고쳐 나가고 있다.
지난해 탁신 총리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무려 3천명이 넘는 마약사범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등 사회적 안전시스템 구축을 밀어붙였다.
경제 사이드에서도 독점구조를 타파하는 'TSE' 운동을 벌였다.
큰 폭의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독점은행 등 '잠자면서 먹기만 하는 호랑이(Tiger Sleep Eat)'를 없애자는 경제 혁신운동이다.
말레이시아는 정부가 먼저 '시스템 선진화'의 모범을 보여준 사례다.
지난 13일 압둘라 바다위 총리는 "아무리 사소한 액수라도 모든 정부조달 계약은 공개입찰에 부쳐 투명하게 처리하겠다"고 대내외에 공표했다.
관급공사 계약시 전 과정을 단계별로 공개, 막후 협상이 가져올지도 모를 폐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연말께 환율제도도 '국제 기준으로 전환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지난 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외환유출 방지 차원에서 달러페그제(1달러=3.8링기트)를 도입했지만 이제는 환율시스템마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NTT의 혼다 히로미츠 사장은 "말레이시아는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퍼스트클래스(first-class) 사회인프라가 훌륭히 갖춰져 있는데다 국가 개혁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동참 의지가 충만해 변화의 속도는 가공할만하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한국ㆍ홍콩ㆍ대만ㆍ싱가포르)보다 동남아 국가들의 개혁 강도가 더 강력하다는 평가도 이 때문이다.
프놈펜(캄보디아)=육동인 논설위원ㆍ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유영석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