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대통령에게 '私的'은 없다..김영근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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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중에는 MBC 사극 대장금(大長今)이 화제다.
이 연속극을 유심히 본 사람들은 조선 중종이 편전(왕이 평상시 거처하는 곳)에 들어설 때 모든 중신이 일어서는데도 불구하고 딱 한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이다.
사관은 임금이 주재하는 국가의 모든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임금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는 과정을 사실대로 기록한다.
심지어 인물에 대한 비평은 물론 왕의 표정까지도 적는다.
사관에 대해선 임금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것마저 예외로 인정해 줬다.
사관은 왕의 신하이긴 하지만 그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에 일부 권한은 왕의 권위 밖에 있었던 것이다.
사관이 쓴 글(史草)은 아무도 접할 수 없었으며 기록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까지도 보지 못하게 했다.
그 글들은 밀봉되어 있다가 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개봉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록된 역사가 조선왕조실록(1392~1910년)이다.
사관과 관련된 웃지 못할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임금이 '큰 실수'를 했고,사관이 그것을 사실대로 적었다.
이를 알아차린 임금이 화가 나 신하들에게 사관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했고,이를 지켜본 '아들 사관'이 "임금이 자신의 실수를 기록한 사관을 죽였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귀담아들어 둘만하다.
새삼스럽게 사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참모들과 오찬을 하면서 '내년 총선 양강구도' 발언을 해 논란을 빚자 청와대측이 사적인 모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의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비난하자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에서 한 얘기를 문제 삼은 것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의 사생활도 인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사적일 수 없다.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이상 모든 언행은 공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대통령에 대해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언론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청와대는 국정기록 비서관을 둬 대통령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 내외에서 행한 말과 행동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면 이는 대통령 통치사료 처리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정책결정과 언행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관저에서 벌어지는 것마저 기록으로 남겨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가 가감 없이 기록된다는 것을 의식했다면 사적이니 공적이니 하는 해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 정파를 지원하는 발언 또한 줄어들 수 있다.
자신의 언행이 공개되는 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참여정부' 국정운영 행적과 자신의 언행이 10년 후,아니 1백년 후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오늘 청와대와 정치권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눈 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는 청와대가 대통령의 사적인 발언이라는 궁색한 논평을 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단1초의 '사적인 시간'을 준 적이 없다.
훗날 역사도 그런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yg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