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갈등이 학술연구로 해결 되겠습니까."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이사회가 얼마 전 경제·사회분야 국책연구소의 연구조정실장들을 불러모아 내년중 사회갈등 문제에 대한 연구활동을 강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 한해 원전센터 사패산터널 등을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이해집단들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표출돼 정책 집행에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국책연구소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당부였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자리에 참석한 각 연구원의 연구조정실장들은 난색을 표시했으며,연구를 담당해야 할 연구위원들 또한 소식을 듣고서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부안 원전센터 사태나 파업 등 올해 쟁점이 됐던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은 정부가 정책의지를 갖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학술적인 연구로 풀릴 사안이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특히 이같은 문제에 국책연구원이 섣불리 의견을 제시했다가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뿐 아니라 자칫 국책연구원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공신력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게 연구원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일부 연구원들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보였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각 연구원들은 내년 3월 말께 워크숍을 열고 해당 이슈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문제는 이때가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치열한 정치적 공방이 펼쳐지는 16대 총선 직전이라는 것.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산하 국책연구원을 동원했던 과거의 악습이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책연구기관들이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데 필요한 근시안적인 연구보다는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기 위한 장기적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하지 않을까. 김동윤 경제부 정책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