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와서 기업인들을 만나 얘기해 보니까 '대구는 시청이나 구청에 가면 안되는 것부터 말한다'며 불만을 털어 놓습니다." 얼마 전 대구시청 월례조례에서 대구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김범일 대구시 정무부시장이 했다는 자성의 쓴소리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 등 이른바 지방살리기 3대 특별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대 애널리 색서니언 교수와 같은 지역개발 학자들에겐 미국 서부 실리콘 밸리와 동부 루트(Route) 128은 좋은 연구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팔로알토 서니베일 샌타클래라 새너제이로 이어지고 스탠퍼드대학이 위치한 실리콘 밸리와,보스턴시 주변의 벌링턴 렉싱턴 월덤에 걸쳐 있으면서 MIT와 연계된 루트 128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쌍벽을 이루던 연구산업단지다. 그 두 단지가 90년대 들어 서로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걷게 됐으니 당시로선 그만한 흥미로운 연구 토픽도 없었을 성싶다. 하여간 잘 나간 실리콘 밸리와 경쟁력을 잃어 간 루트 128을 분석한 결과는 간단했다. 외부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과 기업가적 실험정신에서 실리콘 밸리가 앞섰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실리콘 밸리가 개방ㆍ진보적인 데 반해 루트 128은 폐쇄ㆍ보수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대구로 돌아오면 필자는 그래도 혁신을 논하는 두 연구단지를 놓고 어디가 더 개방ㆍ진보적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부럽다는 생각이다. 김 부시장은 "대구처럼 반기업 정서가 강한 도시는 없습니다. 제일합섬 제일모직을 구미로 쫓아냈는데 여러분들은 옮겨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불평불만을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라고 진단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이유들은 다 제쳐두고 결정적인 이유를 찾아낸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산림청장을 지내서인지는 몰라도 마치 '나무를 사랑하지 않는 곳에서는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당연한 진단같기도 하다. 그의 지적이 맞다면 보수와 진보를 떠나 뭔가 '기본'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그런 곳이 어디 대구뿐일까. 진단을 그렇게 하는 대구는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역마다 차세대 성장산업을 놓고 과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마치 중앙정부의 차세대 성장동력 프로젝트에 대한 치열한 수주전(?)을 방불케 하는 모양이다. 지방정부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솔직히 말해 전통산업이 됐건 신산업이 됐건 무슨 전략산업을 잡아야 그 지역이 성공할지 정답은 없다. 사실 전략산업을 놓고 '사전적(事前的)'으로 어떻고 저떻고들 하지만 결국 전략산업이란 어떤 기업들이 그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커 나가고,또 얼마나 몰려드느냐의 '사후적(事後的)' 표현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김 부시장 말마따나 중국으로 보따리 싸는 기업들이 줄을 서 있는데 서류가 미비됐다고 이리 저리 돌리고,산업단지 개발하는 데 환경평가다 뭐다 해서 몇개월씩 끌어서야 어느 기업이 올까. 그게 변하지 않고선 전략산업을 백날 떠들어도 공염불일 뿐이다. 중앙정부도 달라져야 하지만 지방정부 역시 이것 해 달라,저것 해 달라고만 할게 결코 아니다. 공무원의 마인드라든지 행정규제 등 지방정부 스스로도 개혁이 시급하다. 자기개혁이 따라주지 않는 한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이 아니라 그 이상의 특별법을 만든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