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의 새 영화 '낭만자객'은 강대국에 휘둘리는 약소국의 설움을 다룬 코미디다. 구한말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여성들에 관한 가상 역사를 통해 현대의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건을 풍자한다. 학원 문제를 비판한 '두사부일체',무분별한 성개방 풍조를 희화화한 '색즉시공'에 이어 사회문제를 터치한 윤 감독의 세번째 코미디다. '얼빵한' 자객들이 처녀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살인자인 청나라 군인들과 맞서는 게 기둥줄거리다. 여기에 자객 요이(김민종)의 여동생이 사냥중이던 청군의 실수로 화살을 맞고 숨지면서 주제가 부각된다. 재판은 한양에 주둔한 청나라 대사관에서 열리고 가해자들은 공무수행 중 단순 사고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여중생 사망사건'과 흡사한 설정이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는 가해자들에게 엄중한 심판이 내려진다. 이 영화에서 자객들은 울보이자 겁쟁이로 그려진다. 싸움에선 실수를 연발하고 일상에선 '혐오스런' 행동을 한다. 뒷간에서 동아줄로 밑을 닦거나 대롱을 물고 물 속에 숨어 있는 동안 그들을 향해 오줌줄기가 날아든다. '색즉시공'에서 쥐를 삼키거나 정액으로 만든 부침개를 먹는 장면들을 변주한 것이다. 반면 처녀귀신들은 화려한 액션 신을 보여준다. 슈퍼맨처럼 공중을 날고 자객단에게 무술을 지도한다. 그들은 비운의 여인들이라기보다는 작부 이미지에 가깝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다 음담패설과 욕설을 퍼붓는다. 감독은 또 구한말의 시대상황에 현대적 정서를 충돌시킨다. 극중의 외국인 전용 나이트클럽 '주리아나(酒利亞羅)'에서는 일본인과 중국인 등이 개화기 복장을 입고 21세기 춤을 춘다. 밀실에서는 요즘 룸살롱에서 유행하는 잔 돌리기가 행해진다. '천녀유혼'의 목욕신을 비롯 '취화선''스트리트 파이터''해피투게더' 등을 패러디한 장면들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러나 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과장되고 노골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이는 역설적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강요함으로써 웃음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여중생 사망사건'을 지나치게 가벼운 코미디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도 개운치 않다. 12월5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