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때 해외 부채를 갚느라 큰 곤욕을 치른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차입을 기피, 해외 현지금융 잔액이 6년째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안 빌리고 안 쓰는' 보수적인 경영을 펴고 있는 것이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기업 및 해외법인의 해외 현지금융 잔액은 1백89억1천만달러로 작년 말(2백2억2천만달러)에 비해 13억1천만달러 감소했다. 현지금융은 외국 현지에서 쓰기 위해 진출국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으로,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국내에 예치하거나 들여올 수 없다. 현지금융 잔액은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지난 97년 말 5백32억3천만달러로 사상 최대수준을 기록한 이후 98년부터 6년동안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희원 한은 외환심사팀 팀장보는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부채도 꾸준히 줄여 나가고 있다"며 "올 상반기중 미ㆍ이라크전쟁, 북핵 사태, SK글로벌 문제 등으로 나라 안팎의 불확실성까지 높아져 현지금융 수요가 더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수익성이 낮은 현지법인을 폐쇄하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는 것도 현지금융 수요가 감소하게 된 주요인으로 꼽혔다. 반면 해외 차입여건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 상반기중 현지에서 돈을 빌릴 때 리보(LIBOR=런던 은행간 금리)에 붙는 가산금리는 국내 은행 해외지점이 평균 1.27%포인트, 외국계 은행이 0.91%포인트였다. 이는 작년 하반기보다 각각 0.07%포인트, 0.19%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예전에 비해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가 수월해졌음에도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셈이다. 한은은 대기업들의 투자전략이 공격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현지금융 감소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