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세의 마녀사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근대가 활짝 열려가던 16세기와 17세기 서유럽 지역이 주무대였다. 종교개혁의 깃발을 올렸던 루터의 독일에서 전체 유럽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마녀사냥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아이러니다. 종교적 신념이 악행의 근원을 이룬다는 말은 기실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오도된 열정들이 넘치는 곳에서는 언제나 비슷한 사태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마녀사냥의 원조 독일이 20세기 들어 또다시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빠져들었던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독일 철학의 열정과 바그너의 비극들이 잘못 결합되면 언제나 지극히 위험한 사태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어떻든 이런 과정을 거쳐 20세기초를 뒤흔들었던 독일 경제 대불황의 책임은 유태인들이 모두 뒤집어쓰게 됐다. 지식계층이 주도하고 개혁주의자들이 선봉에 서는 것은 놀라울 것도 없는 마녀사냥의 일반 법칙이다. 사회 모순이 깊어져 급격한 변화가 예고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불행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언제나 사태를 책임질 희생양을 찾게 된다. "저놈이 원흉!"이라는 고함소리가 울려퍼지기만 해주면 음모는 스스로 뼈대를 갖추고 살을 붙여가면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사안을 단순화시키고 본질을 은폐하며,합리적 분석과 처방보다는 대중의 불만을 다급하게 무마하려고 할 때는 마녀를 내세우는 것처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지난 수년동안 우리나라 경제계를 배회해 왔던 불쌍한 마녀들의 명단도 그렇게 작성되어 왔다. 외환위기 책임을 기업들에 몽땅 뒤집어씌운 것은 아마도 마녀사냥의 대표적인 사례였을 것이다. 환율정책 등 정부의 실패는 무모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기업들의 과다한 부채와 낡은 경영구조가 문제!"라는 고함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다른 원인과 책임들은 모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여기에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경쟁자들까지 가세했었다. 어떻든 기업을 속죄양화하고 대중의 반기업정서를 공고히 하면서 정치와 정부는 외환위기 책임론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갔었다. 개혁을 표방하는 정권 교체 세력들이 기회주의적인 관료집단과 결합하면서 희생양 만들기가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재벌 죽이기가 지속되고 반(反)부자 캠페인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바로 그런 논리에서다. 상속세 완전 포괄주의나 출자총액 규제들은 차라리 마녀 식별용 체크 리스트라고 해야 옳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아마도 '강남 마녀 때려잡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진표 부총리가 직접 강남을 거명하며 투기근절을 외치고 있고 대통령조차 강남불패를 막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강남을 방패막이 삼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희생양을 만들어 책임을 떠넘기는 수법은 정말이지 다양하다. 부총리가 강남 타도의 깃발을 내걸면서 "은행 대출의 절반을 강남이 독식했다"는 등의 온갖 마녀 확인절차가 일제히 동원되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나중에는 "강남지역 아이들이 (부동산이라는 케이크를 먹고) 키가 몇㎝씩 크다고 하더라"는 따위의 인종적 증거까지 동원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증거가 없어 마녀가 되지 못했던 사례는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정부는 정책 실패의 책임은커녕 이제는 강남을 때려잡아야 하는 명분을 내세워 서툰 칼자루를 더욱 힘주어 쥐게 된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