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력산업이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수출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전력이 중국과 필리핀의 발전소 사업을 수주해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길을 튼 데 이어 한전기공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 등 관련 회사들도 발전설비와 발전소 설계기술,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의 사업에 참여하면서 전력산업의 해외진출 노하우를 축적해 가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8월 중국 허난(河南)성 정부와 무척 유동층 발전소 사업에 대한 합작 계약을 체결, 중국 전력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는 12월 발전소 건설 공사를 시작, 2005년 10월 준공한 뒤 20년간 운영을 맡는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이에 앞서 지난 95년 필리핀 말라야 화력발전소 성능 복구사업에 뛰어들면서 '전력=수출산업'이라는 새 돌파구를 열었다. 말라야 발전소는 최초의 해외발전 운영사업으로 20년 이상 노후화한 가동불량 발전소를 인수해 필리핀 내 최고 성능의 고효율 발전소로 탈바꿈시켰다. 한전은 오는 2010년까지 이어질 이 사업에서 총 2억달러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준공식을 가진 필리핀 일리한 가스복합화력발전소(설비용량 1천2백MW)도 한전이 수주한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외화수익 사업으로 꼽힌다. 한전은 이번 준공으로 필리핀에서 말라야 발전소를 포함해 1천8백50만MW의 발전설비를 운영, 필리핀 전력설비 용량의 7분의 1을 공급하는 민자발전 사업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준공 후 20년간 운영한 뒤 필리핀에 넘겨주는 '건설ㆍ운영 후 양도(BOT)' 방식으로 추진된 이 사업에서 한전은 모두 25억달러의 전력 판매 수입을 올려 이 중 8억달러 정도의 순이익을 챙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울러 대림산업 현대중공업 효성 등 사업에 참여한 국내 건설업체들도 1억7천만달러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 자회사들의 해외 진출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발전설비 정비업체인 한전기공은 인도 베마기리 복합화력 O&M(운전 및 정비) 공사를 수주, 지난 7일 본계약을 체결했다. 한전기공은 지난 82년 이라크 바그다드의 남부화력발전소 정비공사를 시작으로 중국 광둥원자력발전소 정비기술용역, 말레이시아 타와우리 디젤발전소 운전 및 정비공사, 사우디아라비아 해수냉각설비 운전 및 유지ㆍ관리 공사를 계속 따냈다. 발전소 설계 업체인 한국전력기술(KOPEC)은 현재 대만 룽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설계기술 지원 용역을 수행하고 있으며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 재가동 사업은 물론 관련 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베트남 원전건설사업 참여도 적극 추진 중이다. 한국의 전력산업이 이처럼 수출산업으로 변신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에 비해 역사는 비교적 일천한 편이다. 지난 1887년 소형 자가발전 설비를 설치해 경복궁 안의 전등을 밝히면서 국내 전력산업의 역사가 시작됐지만 일본 식민지를 거치는 동안 주요 발전시설이 북한지역에 집중됐던 탓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력 자급이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랬던 한국이 지금은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해 약 5천6백만kW 설비를 보유, 전력기술 자립화는 물론 축적된 기술을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강동석 한전 사장은 "그 동안 발전 분야에서 한전이 습득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고부가가치 발전사업 수주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해외사업 계약 전문인원을 양성해 해외 수주활동을 강화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