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8:16
수정2006.04.04 08:19
"지방대 출신에게도 중국은 기회의 땅입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과 중국기업간 기술중개 사업을 하는 '북경 미리내 고신기술'에 지난 6월 입사한 박병관씨(33)는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취업난을 극복한 경우다.
국내에서 신학대를 졸업한 그는 톈진대에서 다시 대학생활을 했으며 명문인 칭화대에서 상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술거래소와 한국기술벤처재단의 중국사업을 맡고 있는 북경 미리내 고신기술은 지난 4월 설립과 함께 인터넷에 채용 공고를 냈다.
서울대 박사를 비롯 한국에서 유학한 중국동포 등 60여명이 몰렸다.
박씨가 이들을 제치고 운영 총괄과장으로 발탁된 데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력이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이 회사의 문경덕 대표는 "기술중개는 기술을 사고파는 양측의 대립된 입장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한ㆍ중 양국의 경험이 풍부하고 경제감각을 겸비한 박씨가 적격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해 칭화대 졸업 직후 중국에 진출한 국내 한 중소 광고업체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올 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베이징사무소의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광고업체에 다니면서 중국기업인들을 상대로 익힌 '협상력'은 새 직장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박씨가 중국으로 눈을 돌린 건 한ㆍ중 수교가 이뤄졌던 1992년.톈안의 성화신학교 3학년 때 교육부 후원으로 중국을 보름간 돌아본 게 계기가 됐다.
수교 전부터 중국 유학을 하고 있는 한국학생들을 보고 결심을 굳힌 것이다.
주위에선 "못 사는 나라에 왜 가느냐"고 말렸지만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신학교 졸업 후 알게 된 서울여대 중국인 교환교수 소개로 혈혈단신 톈진으로 떠났다.
어학연수를 끝내고 대학원 문을 두드렸지만 "신학교를 다녀서 대학원 입학 자격을 주기 어렵다"는 통보가 되돌아왔다.
그는 대학을 다시 다니기로 했다.
대학은 톈진대, 전공은 법학을 택했다.
그는 대학을 3년 만에 조기졸업했다.
그러나 상법 전문가가 되기에는 아직 모자랐다.
톈진대 교수의 소개로 상법으로 유명한 칭화대의 왕바오수 교수를 찾아갔다.
왕 교수는 "대학원에서 법학 전공의 유학생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일단 공부하면서 기다리면 응시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읽을 책 목록을 적어줬다.
박씨는 왕 교수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 매달렸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학성적과 면접만으로 칭화대 석사과정에 합격할 수 있었다.
박씨는 "중국 유학 경력이 있다고,또 명문 칭화대나 베이징대를 졸업했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중국 인맥을 구축하고 경험을 쌓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씨가 대학원 시절 공부와 사람 사귀는 시간을 절반씩 할애한 것도 그 때문.
통역 번역 홈페이지 구축 등 아르바이트에도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학비 조달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한ㆍ중 양국 기업인들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저희 회사 돈 많이 벌게 해야지요. 한ㆍ중 기술거래가 활발해지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실용주의 학풍으로 유명한 칭화대 출신답게 실리적인 포부를 밝힌 그는 "적어도 15년 이상은 중국에서 경험을 쌓겠다"며 활짝 웃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