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서양 대 동양'으로 양분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측과 중국을 축으로 한 동방세력간의 환율전쟁이 그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가 환율싸움 진정에 나섰으나 세계경제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 미국과 유럽의 대아시아 공동전선 구축 환율전쟁의 불씨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아시아권 내에서 지펴졌다. 연초 일본이 중국정부에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하면서 환율전쟁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중국이 저평가된 위안화가치를 앞세워 값싼 제품을 대거 수출, 일본의 디플레가 심화되고 있다"며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존 스노 미 재무장관 등 미국정부가 지난 6월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을 넣으면서 양측간 환율마찰이 가시화됐다. 지난 3년간 줄어든 2백70만개의 미국 일자리중 상당수가 위안화의 저평가에 따른 미 기업 경쟁력 상실 때문이라며 중국을 압박했다. 미 정부는 동시에 엔과 원화 등 동아시아국가 통화에 대해서도 평가절상 압력을 가했다. 동아시아 4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거론하면서 시장개입을 중단하고 환율을 시장에 맡길 것을 주문했다. 아시아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공정한 국제환율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미국이 주타깃을 위안화로 삼으면서 엔화 등 다른 아시아 통화가치의 절상을 요구하자 일본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 중국정부를 향한 평가절상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가치의 급등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해진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이 지난 7월 아셈(아시아유럽회의) 재무장관회담에서 "동아시아도 달러 약세의 부담을 공유해야 한다"며 위안과 엔 원화의 절상을 요구했다. 이런 참에 지난 주말 선진7개국(G7) 재무회담에서 미국과 EU는 일본의 반대를 누르고, 시장환율주의로 정의되는 유연한 환율제도를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본격적인 환율전쟁의 서막이었다. 이 선언문은 특히 지난 85년 달러 약세를 이끌어낸 플라자합의의 재현인 '신플라자 체제'의 태동으로 비춰질 정도로 아시아 통화가치의 급등을 초래했다. 하지만 쾰러 IMF 총재는 미국의 환율 압박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등 미국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환율전쟁 유탄에 신음하는 엔과 원화 환율전쟁의 핵은 중국 위안화지만, 엔화와 원화가 오히려 직격탄을 맞고 있다. 마치 환율전쟁의 구도가 '달러 대 위안화'에서 '달러 대 엔ㆍ원화'로 바뀐 것처럼 엔화와 원화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G7 공동성명 후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15~1백16엔선에서 1백11엔대로, 원화가치는 달러당 1천1백70원대에서 1천1백50원대로 치솟았다(환율은 급락). 반면 위안화의 경우,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지않는 선물환 시세만 폭등했을 뿐 실제 가치는 달러당 8.27위안선에서 변함이 없다. 중국정부는 '현행 환율제도를 바꾸지 않겠다'며 미국과 EU의 합동공격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은 내년 초에야 위안화 환율 변동폭을 기존의 0.3%에서 3~5%로 확대, 국제사회의 절상 압력을 일부만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한국과 일본 대만은 중국을 대신해 환율전쟁의 주역이 돼 통화가치 상승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메릴린치 등 미 금융회사들은 내년 초 엔화는 달러당 98엔, 원화는 달러당 1천50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일본과 한국 경제는 환율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되면서 경기회복이 요원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