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막(한국시간 15일 오전 10시)을 하루 앞두고 골격을 드러낸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은 미국-유럽연합(EU)을 주축으로 한 농산물 수출국들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는 관세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은 물론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농산물 관세를 대폭 인하하도록 하는 등 농업시장 전면 개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들이 채택될 경우 한국의 농업은 개도국 지위 여부에 관계없이 전면 개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또 내년부터 WTO와 갖게 되는 쌀시장 개방 재협상에서도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어떤 내용 담겼나 농산물 관세감축 방식과 관련해 선언문 초안은 세가지 관세감축 방안을 담고 있다. 국가간 기존 관세율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국제적인 상한선을 정해 평균 관세율을 일괄적으로 끌어내리는 소위 스위스방식은 주로 농산물 수출국(케언즈 그룹)들의 주장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와 스위스 등 농산물 수입국(G-10그룹)은 국가별 품목별로 기존 관세율을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일정 비율씩 점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방안, 즉 UR방식을 주장해 왔다. 관세 자체를 철폐하자는 사실상 무관세화 주장(관세율 5% 허용)은 그중 가장 과격한 세번째 안이다. 초안은 이 세가지 방안을 혼합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대신 개도국에 대해서는 시장 개방의 충격을 줄여 주기 위해 국가별로 특정품목(SP)과 전체 농산물의 일정 비율을 관세감축 대상에서 제외할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협상 대상품목은 1천4백47개. 이들중 어떤 품목이 어떤 방식의 적용을 받을지는 앞으로의 협상에 달려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더라도 현재 한국 농산물의 평균 관세율 수준인 64.3%보다는 크게 낮아질 것이 확실하다. 관세 차이만큼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고 한국 농업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말이다. 국가별 관세 수준은 인도가 1백24%로 가장 높고 일본이 11.7%, 미국이 5.4%, 캐나다가 4.6% 등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으면 쌀 등 전략품목을 특정품목으로 지정해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지만 협상장의 분위기는 한국에 개도국 지위를 줄 수 없다는 쪽이다. 쌀 관세화 통한 개방 가능성 만일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데 실패하고 게다가 관세감축 방식으로 스위스 방식이 채택될 경우 국내 농업은 뿌리째 흔들릴 것이 우려된다. 마늘과 양파 고추 생강 등 1백42개 품목에 1백%가 넘는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한자리 숫자 또는 20% 이하의 낮은 관세 상한선이 도입될 경우 국산 농산물의 설 땅은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이행기간을 둘 것이냐의 문제가 있지만 발등의 불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지난 94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쌀 수입자유화(관세화)를 10년간 유예받은 한국은 이번 협상과 상관없이 내년부터 쌀 개방 재협상을 가져야 한다.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쌀 재협상의 전도 역시 결코 순탄치 않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쌀을 비롯한 일부 비교역적 관심품목(NTCㆍ한국의 경우는 쌀)을 어떻든 관세감축 대상품목에서 제외시키도록 해야 하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협상시한 연장될수도 내년 말까지 DDA 협상을 종료한다는 것이 WTO의 목표다. 만일 협상이 타결되면 1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06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협상이 1년 혹은 2년 이상이라도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어쨌든 지난 94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종료된지 10년만에 한국 농업은 전면 개방에 다시 노출되고 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