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의 김순응 대표(50)가 '한 남자의 그림사랑'(생각의 나무)이라는 미술에세이를 냈다. 하나은행 출신인 김 대표는 모든 은행원들의 꿈인 임원으로 내정돼 있었지만 2000년 3월 23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미술계에 뛰어들어 화제를 일으킨 인물. 이 책은 저자가 서울옥션의 CEO로 변신하게 된 배경과 3년간 미술시장에서 몸소 체험하면서 느낀 소감을 진솔하게 담았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MBA(경제학석사)를 취득한 그는 경영 경제학 전공자답게 각종 국내외 미술 관련 통계를 근거로 국내 미술시장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 미술시장이 10년 이상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원인이 미술품 구매층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품 가격이 작가와 화랑 주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작가는 장기 불황인데도 호당 가격을 올리면 올렸지 내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뒤로는 훨씬 싸게 파는 작가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러한 '이중가격'으로 인해 컬렉터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것이죠." 그는 국내 미술시장에 대해 "미술품이 그저 거래될 뿐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시장가격도 없고 시장(market)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는 이 책에서 중견 작가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서 싸게 거래돼 시장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일부 화랑들의 지적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매 출품작이 전시장 판매가의 3분의 1,심지어 5분의 1 가격에 낙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낙찰가는 공개시장에서 수요 공급의 원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미술품 가격은 이제 공급자인 작가나 화랑이 아닌 소비자(구매자)의 입장에서 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20년간 미술품을 구입해 온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독창적인 작품에 주목할 것 △작가의 대표작을 살 것 △젊은 작가의 작품을 살 것 등 '컬렉션 가이드'도 제시했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