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은 저희 신세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귀사의 적극적인 협조와 동참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윤리경영에 반하는 당사 임직원들의 행위나 사례가 있으면 기업윤리실천사무국으로 연락해 주시면 즉시 시정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2001년 1월7일), '다음은 사소하지만 저희가 꼭 실천하고자 하는 일들입니다.우리 생활 습관과 인정에 맞지 않고 결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부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협조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2000년 12월1일) 구학서 사장이 6천여개 협력회사 대표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편지의 일부 표현은 거의 읍소(泣訴)에 가깝다. 2001년 초 구 사장의 편지내용을 전해들었다는 L과장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때까지도 윤리경영에 대해 반신반의했습니다.하지만 사장께서 보냈다는 편지 내용을 거래처 사람들로부터 듣고는 정신이 확 들더군요.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겠다는… 뭐 그런거였죠." 변화는 협력회사 상담에서 먼저 나타났다. 식사 시간을 피해 협력업체와 상담을 하는 바이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 식사를 하는 게 뭐가 문제였을까? 기업윤리실천사무국 이병길 국장은 "당시만 해도 상담이 점심·저녁식사 자리나 술 자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곤 했다"며 "인간적인 친분을 나누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각종 비윤리적인 관행에 젖어드는 자리로 변질되기도 했던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윤리규범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 자리는 애초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 '오전 집중 상담제'를 도입했다. 협력회사들에도 물론 제도 도입 취지를 알렸다. 오전 집중 상담제란 식사시간을 피해 오전 9시30분∼11시 30분에 상담을 하는 것. 상담이 지연돼 식사가 불가피할 때는 구내식당을 이용하도록 했다. 2001년 초부터 신세계백화점 소공동 본사와 이마트 응암동 본부의 구내식당이 붐비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엔 '바이어와의 상담시간은 오전시간(09:30∼11:30)을 이용하시면 더욱 편리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백화점과 할인점 상담실에 붙어 있다. 협력업체 관계자들에겐 무료 식권도 나눠준다. 금품이나 향응 편의 등을 제공받았을때 회사에 신고하는 직원도 크게 늘었다. '금품·향응·편의 수수 신고' 건수는 2001년 37건에서 지난해 1백70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초기엔 뇌물성 현금,상품권,고가 선물 등이 주로 신고됐지만 요즘엔 기념품,작은 샘플 등 사소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든 직원이 변화의 물줄기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이마트에 근무하는 A씨는 대리점주로부터 복날 보신탕을 대접받고 이어 집들이 선물도 받았다가 중징계가 내려졌다. 해당 대리점은 교체됐다. 명절때 3만원짜리 사과 1박스를 받은 B씨도 신고하지 않아 중징계에 처해졌다. 선물을 보낸 협력회사도 6개월간 거래 중단됐다. 이같은 서릿발 같은 조치들을 통해 신세계 임직원들은 물론 협력회사들도 구 사장의 단호한 의지를 점차 확인하기 시작했다. "작은 사정을 모두 봐 주면서 어떻게 수십년간 계속돼 온 구습을 뿌리뽑을 수 있습니까.체질을 바꾸고 윤리경영을 기업 문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윤리를 강조하면서 규정을 들이대고 처벌해도 문화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구 사장은 윤리규범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즈음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