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브라질-도전과 변화] 지지기반에도 과감히 '메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또또까 형, 우린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을까."(제제)
"아마 그럴걸."(또또까)
1968년 발간된 호세 마우로 바스콘셀라스의 유명한 성장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나오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다섯살배기 주인공 제제.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받고 싶어 하지만 '철이 든' 형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착한데 왜 아기예수가 선물을 주지 않아"라는 동생의 질문에 또또까는 "아기 예수가 부자집 아이들만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며 몰래 눈물을 훔친다.
소설은 어리고 가난한 제제가 현실의 비극에 눈을 떠가며 슬픔을 느끼지만 끝내 꿈을 잃지 않는다는 감동적인 얘기를 담고 있다.
그로부터 35년.
제제가 실존 인물이라면 마흔살이다.
제제는 과연 빈민가를 탈출했을까.
지난 7월2일 브라질의 세계적인 관광도시 리우데자네이루.
삼바의 본고장인 이 곳 주정부 청사 앞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주정부의 환경미화원에 응시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2천명을 뽑는데 응시자는 무려 16만명.
안토니오 브리뚜씨(35)는 "지난해 초 다니던 전기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지금껏 실업자로 지냈다"며 "반드시 취직해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브라질 빈민들의 삶은 제제가 상파울루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가슴 설렐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현재 공식 실업률은 14%.
2년 전보다 2배 높아졌다.
게다가 하루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사람도 5천만명이 넘는다.
한때 5천달러를 넘나들던 1인당 국민소득은 2천8백달러로 주저앉았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민중의 대통령'을 표방해온 그에게 이보다 가슴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룰라에겐 당장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힘이 없다.
정부 곳간은 비어 있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처방으로 수천개 기업이 도산한 마당에 하루 아침에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결국 룰라는 분배 대신 성장을, 기업 규제 대신 고용 창출을 경제개혁의 근본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 자신의 집권 기반인 노동조합에도 개혁의 칼날을 시퍼렇게 세웠다.
노조에 대한 근로자들의 의무적인 기부금 납부를 폐지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고 재정지출 감소를 위해 공무원들의 연금을 대폭 깎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것.
지난 6일 이 법안이 압도적인 찬성률로 하원을 통과하자 수만명의 공무원 노조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을 규탄했다.
남은 일정은 9월께로 예정된 상원의 표결.
과연 룰라는 역대 브라질의 어떤 정권도 성사시키지 못했던 연금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
브라질 개혁의 성패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리우데자네이루=조일훈ㆍ강은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