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따라 중단없는 남북경협 사업을 다짐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어떤 형태로 사업이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북사업은 리스크가 크고 단기적으로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관광사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단 철도 통신 수자원개발 등 대부분 북한내 사회간접자본과 산업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든다. 따라서 현대로서는 자금력을 갖춘 기업을 대북사업에 끌어들이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당장 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현대상선은 대북사업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방계그룹인 현대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그룹도 자신들의 참여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 자체 해결 어렵다 현대상선은 올해 해운경기 호조에 힘입어 2천5백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호경기는 적어도 내년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자동차선단을 발레니우스-현대차 컨소시엄에 매각해 금융권 부채도 대폭 줄였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대북사업 참여에 뜻이 없다. 이 회사는 지난 98년부터 2001년6월까지 금강산 관광사업에 손을 댔다가 3천억원의 손실을 봤다. 현대상선은 결국 2001년 7월부터 대북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채권단에 '더 이상 대북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줬다. 지금까지 이 약속은 잘 지켜져 왔다. 지난해 취임한 노정익 사장도 수차례에 걸쳐 대북사업 불가를 천명해 왔다. 심지어 현대아산 보유지분(40%)을 팔겠다는 얘기까지 했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이 대북사업 유지를 강력히 원했지만 상선은 그럴 수 없는 처지"라며 "과거 우량했던 재무구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대북사업에 나설 경우) 채권단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괜찮은 편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택배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대북사업에 뛰어들기는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 현대차그룹도 "생각 없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정 회장의 사망으로 현대차그룹이 대북사업을 대신 떠맡는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며 "대북사업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룹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도 이 같은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도 대북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관계자는 "조선-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보다 경쟁력 있게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며 "북한에 조선소를 지을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 현대아산의 파트너는? 김윤규 사장이 이끄는 현대아산은 범(汎)현대그룹 외곽에서 지원세력을 찾아야할 처지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경제성을 갖추면 외국인 자본도 유치할 수 있다지만 현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리스크를 분담하면서 자금력도 갖춘 기업이라면 아무래도 공기업 쪽이 유망할 것 같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처럼 노무현 정부가 남북경제협력을 국책사업으로 계속 밀고나갈 경우 토지공사나 관광공사가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 이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북사업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