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백화점 봄 정기세일 실적이 몇몇 신문에 짤막하게 보도되자 A백화점 홍보팀장은 담당 임원에게 불려가 혼쭐이 났다. "너만 정직하면 뭐 하냐.우리만 계속 실적이 나쁘게 나오는데 이유가 뭐냐"는 게 요지였다. 여름정기 세일이 한창 진행되던 이달 중순.B백화점 관계자를 만나 "이번엔 세일 실적을 제대로 발표합니까"라고 물었다. "우린 상장기업인데 공정공시 문제도 있고….앞으론 있는 그대로 알려 드려야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20일 17일간의 백화점 여름 세일이 끝났다. 3·4분기엔 경기가 다소나마 살아날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던 와중에 열린 세일이라 관심도 컸다. 소비심리 회복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들은 여름 세일 매출이 5.1∼5.8%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두 백화점의 매출감소율은 5.1%로 똑같았다. 우연의 일치려니 했다. 다음날 백화점 세일 매출이 봄에 이어 또다시 감소했다는 기사가 몇몇 신문에 실렸다. C백화점에 전화를 걸었다. "숫자 맞습니까"라고 묻자 이 백화점 관계자는 "실제보다 4%포인트 가까이 줄였습니다"라고 실토했다. 다른 두 백화점의 매출은 실제로는 1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5.1%'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백화점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세일 때마다 되풀이되는 매출 부풀리기는 백화점들이 입점업체들한테 받는 30%대의 매출수수료만큼 요지부동이다. 경쟁사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벽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변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백화점들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젠 소비자들이 백화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중 계속되는 세일로 백화점 가격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금이 가고 있다. '백화점에서 제 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데 누가 바보가 되고 싶어하겠는가. 더구나 할인점 패션아울렛 등 경쟁 업태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백화점들이 매출을 속이고 가격을 속이는 한 소비자들은 점점 멀어져갈 뿐이다. 반성하고 획기적으로 변해야 할 때다. 류시훈 산업부 생활경제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