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0:17
수정2006.04.04 00:22
강성모 (주)헤세드 사장(42).
그에겐 없는게 많다.
사장 전용차가 없다.
비서도 없다.
골프클럽도 없다.
그래서 '3무(無)사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그는 연간 매출액 1천억원(2002년 본사 기준)의 큰 기업 대표이사다.
개인이 창업한 프랜차이즈 전문기업으론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든다.
헤세드를 설립한게 99년 4월.
4년만에 가맹점이 6백개로 늘어났다.
5명이던 직원수는 1백70명으로 불었다.
닭고기 프랜차이즈 'BHC'에 이어 커피ㆍ허브 복합점 '후에버', 맥주전문점 '큐즈'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강 사장은 버스를 애용한다.
"검소함을 과시하려는게 결코 아닙니다. 버스를 타면 거리와 상권, 점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장을 조사하는데 이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습니다. 자가용에 몸을 파묻어 보세요, 상권은 커녕 거리 점포조차 파악이 안되지요."
그의 재산목록 제 1호는 다이어리다.
메모광인 강 사장과 다이어리는 '일심동체'다.
다이어리는 아이디어의 보고다.
10년동안 채운 50권의 다이어리에서 수십개의 사업특허가 나왔다.
"앞쪽에는 당장 해야될 일을 적어놓구요, 뒤부터는 한달뒤나 일년뒤 중장기 과제를 적어놓습니다. 시시각각 떠오르는 짧은 생각들을 버리지 않고 메모했다가 나중에 정리하니 훌륭한 사업계획이 엮어지더라구요."
메모 습관은 사업을 살찌우는 거름이 됐다.
잠 자는 시간외에는 생각하고 메모한다.
자택이든, 사무실이든, 거리든 가릴게 없다.
경기 고양시 화정동에 있는 그의 아파트 화장실에도 가죽 메모장이 선반 위에 놓여 있다.
물이 튀는 곳이라 가죽을 덧씌웠다.
거실과 주방, 침실에도 메모장 투성이다.
"잠이요? 밤 12시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면 깹니다. 군대갈 때 결심한 건데요, 여지껏 지키고 있습니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활습관으로 자리잡았다.
강 사장이 고등학교 2학년때 집안은 풍지박산이 났다.
건설업을 크게 하시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은 것.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나운서가 되려던 꿈도 접었다.
5남매는 새벽 4시 일제히 우유배달을 나서야 했다.
스물일곱살 때였다.
형의 소개로 우연히 국수 프랜차이즈 본사에 들어갔다.
별로 뛰어난게 없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한달만에 가맹점이 수십개가 새로 생겼다.
돈이 굴러들어왔다.
"바로 이것이구나."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시 우리나라는 프랜차이즈산업 불모지였어요. 이런 틈새시장에서 미래를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당장 종로서적으로 달려갔죠. 프랜차이즈 서적이라곤 '맥도널드 히스토리' 딱 한권밖에 없어 밤새 책을 독파했지요."
80년대 중반이후 10년간 강 사장은 여러 종류의 프랜차이즈 기업을 섭렵했다.
국수를 필두로 베이커리, 맥주, 식품유통회사 등을 거치며 실질적인 전문경영인 노릇을 했다.
점포와 메뉴 개발, 매뉴얼 작성, 가맹점 전개 등 프랜차이즈 기업이 갖춰야 할 노하우를 충분히 쌓았다.
"일요일이나 휴가 따위는 아예 잊어버렸습니다. 일에만 파묻혔죠. 월급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내가 창업해서 할 일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1997년 독립을 결행했다.
업계 후배 5명을 끌어들였다.
시장조사, 사업아이템 선정, 메뉴개발 등 사업 그림을 그려나갔다.
돈이 없던 터라 2년을 배고프게 보냈다.
그러나 자신감은 충만했다.
드디어 99년 회사를 정식으로 출범, 프랜차이즈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