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네덜란드 방식'의 노사화합 모델을 거론해 적지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노조의 임금동결을 골자로 하는 노사타협 모델이 새삼 논쟁거리가 되는 것도 재미있지만 '된다 안된다'는 양 진영의 입장이 뒤바뀐 것 같아서,그리고 새삼 네덜란드 모델을 들고나온 측의 현실인식이 너무도 한가한 것 같아서 씁쓰레한 뒷맛이 남는다.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는 인사가 항용 저지르는 실책의 하나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제도나 관행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마치 자신이 내는 아이디어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인 양 착각한다는 것인데,불쑥 튀어나온 네덜란드 논란도 바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사정위원회가 설치돼 있고,노사협의회가 가동되고 있는데다 대부분 노조가 이미 네덜란드 모델 이상의 수준에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터에 '제한적인 경영참여와 임금동결'이 대타협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성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백화제방이며 국가이념과 사회공학의 혼란스런 학술대회같은 작금의 상황에서 누구든 또 하나의 노사 모델을 제안한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정부 역시 5년 내내 DJ노믹스냐 대중경제론이냐를 둘러싸고 적지않은 혼선이 있었다. 국가의 갈등구조가 복잡할수록,시쳇말로 먹고살기 힘든 나라일수록 '이렇게 가자,저렇게 가자'는 논란이 많은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문제는 모델의 현실성이며 모델들 간의 정합성이다. 한마디로 말이 되는 소리여야 하고 각각의 정책들이 서로 간에 최소한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문제와 노사정책이 바로 그런 사례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유럽형 제도가 사회통합적 기능을 갖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를 주주중시로 개편하겠다는 월스트리트식 개혁과제는 접어두는 것이 옳다. 증권시장 육성 정책도 접는 것이 타당하며 은행 민영화도 벤처 육성도 포기하는 것이 옳다. 노조와 이익을 공유하면서 주주가치,다시 말해 주가의 극대화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고 끝에 한몫 잡는 것이 정당화되는 벤처논리와 경제적 형평성은 그 논리적 거리가 너무도 멀다. 개별적으로 그럴 듯한 정책이라고 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지와 순진 둘 중의 하나다. 그것은 사자의 이빨과 코끼리의 다리,독수리의 발톱과 상어의 지느러미를 엮어 무언가 강력한 동물을 창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유아적 사고와 다를 바 없다. 창의적 기업가정신이 사회형평이라는 문화적 토대에서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수리와 날개와 상어의 이빨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다. 부분의 합이 전체와 같다고 착각하는 것을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또는 총합의 오류(fallacy of aggregation)라고 부르지만 지금의 개혁과제들이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닌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식을 부르짖는 노조 행동가들과 미국식 지배구조를 열망하는 주주 운동가들이 참여정부 하에서 강력한 동맹군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둘 사이에는 기업과 기업인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 외엔 그 어떤 일치점도 없다. 반(反)기업정서의 동맹세력일 뿐 세계관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과제들이 중구난방식으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