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5:17
수정2006.04.03 15:19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11일 오후 시내 마포구 동교동 사저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을 예방, 김 전 대통령의 건강과 과거 야당시절 및 정 대표의 선친 정일형 박사 등을 화제로 30여분동안 대화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감색양복에 분홍색 계통의 넥타이를 매고, 시종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으나 간혹 농담도 곁들였다.
거실에는 지난 97년 대선전후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후 미국 시사잡지 표지에 실린 김 전 대통령 사진과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 액자 5개와 노벨평화상 수상 사진 및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남북정상회담 축하 메시지 액자 등이 걸려있었다.
정 대표가 먼저 "총재님 저왔습니다. 몇킬로그램 빠지신것 같아 날씬하게 보입니다. 투석이후 기분이 좋아지셨다면서요"라고 인사하자 김 전 대통령은 "여러가지로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총재님께서 남북문제와 외교문제에 대해 충고해주시고 필요하면 역할을 다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내가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며 "여러분이 잘하면 지켜보겠다"고 불관여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정 대표를 보니 돌아가신 선생님(정일형 박사) 생각이 난다.
선생님과 사모님(이태영 박사)에게 평생 큰 은혜를 입었다"며 "사직동에서 당수로 나갔을 때 그 양반이 표를 얻으러 뛰던 생각이 나고 지난 71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나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경쟁을 할 때 어르신이 피켓을 들고 서 계신 것을 보고 나같으면 못할 일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은 자유당때부터 해공 신익희, 조병옥, 장면, 박순천, 정일형 박사에 이어 여기까지 오게됐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최근 민주당내 신당논의와 관련, 주목을 끌었다.
또 "일본사람의 행동규범은 의리이고 한국사람은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위해선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 옳다"면서 "다나까 수상이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되고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는데 이후 다나까파가 더 늘어났다"며 "우리나라는 그런 문제가 생기면 명분이 안되는데 어떻게 따라가느냐 하면서 이탈한다"고 일본과 한국정치 문화의 상이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민의 한(恨)과 관련, 그는 "한은 복수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달성할 때 풀린다"며 "우리는 민주주의와 잘사는 나라를 만들 때 한이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 대표의 국회의원 선수(選數)를 묻고 정 대표가 '5선'이라고 답하자 "내가 한수 많다"며 "대통령과 국회의원 떨어진 사람중 내가 단연코 1등"이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정 대표가 김운용 의원이 국회의원 연금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소개하자, 김 전대통령은 "정 대표가 연금제도를 만들면 나도 덕을 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두 사람간 대화에선 신당문제와 대북송금 특검수사 등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전승현 기자 shch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