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농ㆍ어가 피해보상 문제로 표류위기에 빠진 가운데 한ㆍ일간 FTA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7일 도쿄에서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FTA '조기 추진'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정부 차원의 실무 협상이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8일 일본 경제 4단체장과의 조찬 간담회에서도 "조기 체결을 희망한다"고 재확인했고,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서는 "한ㆍ일 FTA로 일부 국내 산업이 타격을 받더라도 궁극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한ㆍ일 FTA가 시행될 경우 일본에 비해 취약한 전자 자동차 화학 등 상당수 제조업 부문에서 국내 시장이 빠르게 잠식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해당 업계는 물론 산업자원부 등 관련 정부부처에서도 FTA 추진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양국 정상간의 합의가 실제 협상으로 곧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한ㆍ일 '동상이몽(同床異夢)'


일본은 이번 한ㆍ일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 가운데 하나로 FTA 문제를 제기할 만큼 조기 체결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닛케이 등 주요 일본신문들이 '한ㆍ일 FTA 협상 연내 개시'를 보도하는 등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수행중인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내 산업의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연내에 협상을 시작하기는 힘들다"고 말했고,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도 "경제계의 입장에서 보면 되는데 상당히 유보적인 제조업체도 있다"고 밝혀 연내 협상 추진에 대한 방침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지난 65년 한ㆍ일 국교 수립 이후 대(對)일본 무역적자가 무려 1천9백20억달러에 달하는 만성적인 역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FTA가 조기 시행될 경우 국내 시장이 일본 제조업체들에 장악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봉규 산자부 무역투자실장은 "국내 부품ㆍ소재 분야 등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일본에 뒤처져 있는 상태에서 무작정 FTA를 체결할 수는 없다"며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가 얼마나 타격을 받게 될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본의 속내는 중국 견제


한국과 달리 일본은 한ㆍ일 FTA 체결을 위해 '조바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을 FTA 파트너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인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에 역내 경제 패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사양화된 생산 기술을 다른 나라에 넘기고 지식기반 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하려는게 일본의 복안"이라고 말했다.



◆ 연내 착수 쉽지 않을 듯


양국은 FTA 체결을 위한 전 단계로 작년 3월부터 산ㆍ관ㆍ학 공동연구를 진행, △민감한 품목에 대한 관세 단계적 철폐 △서비스 무역 자유화 촉진 등에 관해 의견을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일본의 한국 직접투자 확대, 기술 이전 등이 이뤄지지 않은 채 FTA를 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산ㆍ관ㆍ학 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한ㆍ일 FTA는 국내 산업구조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 만큼 일본 기업의 국내 투자 확대를 보장할 수 있는 조치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