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핵심두뇌 轉職 '속앓이' ‥ 법정다툼 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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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핵심인력의 전직을 둘러싼 법정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의 기술노하우 보호와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놓고 '기업과 개인' 또는 '관련기업간' 갈등이 증폭되는 추세다.
반도체ㆍ통신 등 세계적인 첨단 기술노하우를 가진 기업일수록 핵심인력 1명이 경쟁사로 빠져 나갈 경우 차세대사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연구개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핵심 인력유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상의가 최근 2백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8.1%가 '핵심인력 유출로 고민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대체인력 확보에 따른 금전손실, 지식재산과 노하우 유출 등 직간접적인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분야를 중심으로 고임금 우수인력을 채용하면서 '최소한 0년간 경쟁업체로 전직을 않겠다.
퇴직 후 몇년간 동종업체에 가지 않겠다'는 식으로 채용단서조항을 만드는 등 각종 예방장치를 마련하지만 역부족이다.
2030 신세대를 중심으로 '평생직장은 없고 평생직업만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대기업의 고급 인력들 사이에도 전직을 하려는 풍조가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전직분쟁 급증추세 =지난달 18일 법원은 L전자가 P사로 이직한 연구원 5명을 상대로 낸 전업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1년간 이직금지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들이 L전자를 퇴직할 당시 퇴직 후 1년간 L전자의 동의 없이 동종업체 또는 경쟁업체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전업금지 약정을 작성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전 직장인 L사의 손을 들어줬다.
S전자의 핵심 기술인력인 이모씨가 P사로 옮길 때 벌어진 법정분쟁은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이긴 케이스다.
S사는 이씨를 상대로 전업금지 등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기업의 직원에 대한 전직금지는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며 퇴직 후 영업비밀 유지기간을 너무 장기간으로 책정할 경우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의 직업선택 및 영업의 자유를 제한, 부당한 독점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사간 인력 스카우트의 경우 자존심 다툼까지 겹쳐 기업간 법정공방으로 비화되기 일쑤다.
화장품 회사인 T사가 직원 5명을 뽑아간 L사를 상대로 '직원을 스카우트하면서 영업비밀까지 가로채갔다'며 법정싸움을 벌인 것이나 대기업인 H사가 자사 연구원 3명을 빼내간 모 벤처회사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중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도 같은 케이스다.
이런 법정다툼에서 법원은 통상 1∼2년간 이직금지에 대해선 기업 손을 들어주고 그 이상에 대해선 개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우선 감안해 판결하는 추세다.
◆ 기술보호와 직업선택 자유 '충돌' =반도체산업 등의 경우 핵심기술인력은 머리 속에 설계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여서 이들 몇몇만 빠져나가도 기존 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등 첨단기술기업들은 핵심인력의 이직을 막기 위해 두둑한 보상을 아끼지 않는 등 엄청난 '공'을 들인다.
삼성전자 서종국 차장은 "핵심 기술인력 1명이 빠져 나가면 1천억원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면서 "모두가 세계 최고의 직장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인사 및 보상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 대기업 연구실에서 근무하다 벤처기업 연구분야를 맡아나온 김모씨는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진화하는 상황에서 퇴사 후 1년이나 취업을 금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면서 "요즈음 세대에는 통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장상수 상무는 "신세대 직장인은 관료적인 조직분위기, 윗 세대와의 갈등을 못견뎌한다"면서 "개인의 창의성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인사관리기법을 개발하는 등 대기업이 시대변화를 수용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후진 기자 jin@hankyung.com